[의창]익숙한 것들과의 이별

입력 2009-09-21 07:13:27

진작부터 아내와 벼르던 '묻지 마' 관람을 했다. 대구 예술영화 전용관인 동성아트홀이라는 소극장이었다. 클래식을 듣는 귀는 다 고상하고 뽕짝을 부르는 입은 하나같이 뻔하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다만 '웰메이드(well-made)'라는 상표 아래 넘치도록 달착지근하고 기름진 음식에만 길들여지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입맛조차 잃어버리는 건 아닐까? 할리우드라는 공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명품들의 홍수와 나보다 더 먼저 내 입맛을 알아차리고 챙겨주는 대형마트의 기획 상품더미 속에서 눈 멀고 헤매게 되는 건 아닐까? 아주 가끔씩 조바심이 일어난다.

그날 무작정 관람한 영화는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약속해줘!(2007년)'였다. '집시 음악, 거칠 것 없는 전설과 꿈의 세계 등 유고의 전통적인 요소들을 한껏 모아 영화를 만드는 마술적 사실주의의 거장'이라는 거창한 소문과 '성적 에너지와 슬랩스틱 코미디가 버무려진 영화'라는 조금은 알딸딸한 소개, '페데리코 펠리니와 버스터 키튼의 행복한 결혼'이라는 프랑스 신문의 탄성, '오두방정에서 지랄발광까지'라는 어느 평론가의 탄식 사이에서 마냥 헤매다가 나왔다. 요란한 마술쇼 너머 어디쯤에 사실의 조각들이 숨어있을까? 애초부터 무엇이 있기는 한 것인가? 혼자만의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그냥 한바탕 웃자는데 꼴같잖게 궁상을 떨고 있는 꼬락서니가 보기에 딱했을까. 영화는 아예 노골적으로 '해피 엔드(Happy End)'라고 오금을 박고서 마무리됐다. 번듯하고 북적거리는 큰길이 아닌 막막하고 때로는 곤혹스럽기까지한 외진 길로 아주 가끔씩이라도 다시 찾아오리라는 약속을 하고 극장문을 나섰다.

이유식이란 젖을 떼는 시기의 아기에게 먹이는 젖 이 외의 음식이란 건 다들 알고 있다. 그러나 단지 성장기에 부족하기 쉬운 영양분들을 보충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그냥 주어지는 대로 부드러운 것을 받아먹는 단계에서 제 손으로 떠먹고 딱딱한 것들을 제 입으로 으깨고 씹어서 삼키는 훈련의 중요한 과정이다. 제 입맛에 길들여진 달착지근한 것에서 벗어나 좀 더 다양한 맛들과의 만남도 준비해야 한다. 이는 자립심과 두뇌발달을 꾀하고 편식을 피할 수 있는 아주 요긴한 것이다. 깡통과 우유병에 준비되어진 웰메이드 이유식이란 제 아무리 풍성하고 맛깔스럽다고 해도 이미 절반의 실패를 감수해야 한다. 지금껏 자기에게 익숙한 것들과 결별하고 홀로서기를 한다는 것은 비단 아기들만이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니다.

송광익 늘푸른소아청소년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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