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재의 여담女談] 오후 3시

입력 2009-09-11 14:54:42

오후 3시는 참으로 어정쩡하다. 무엇을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고 포기하자니 너무 많은 시간이 남아있어 아주 애매하다. 그래서 사랑하기 힘든 시간이다. 하루 중 가장 지루하고 허전한 시각이기도 하다.

일상의 무료함과 단조로움이 극에 달하는 오후 3시. 영화 '해운대'에서는 거대한 쓰나미가 몰려온다. 모두가 멀뚱멀뚱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 시간에 예기치 못한 거대한 파도가 덮쳐와 모든 것을 송두리째 휩쓸어 버린다. 그리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조용해진다.

영화 '해운대'서 오후 3시는 그랬다. 쓰나미가 밀려와 사랑하는 사람과 일상을 빼앗아간 시간이기도 했지만 남은 이들에겐 지난 것의 잔해를 정리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오후 3시는 새로운 일이 시작되는 시간이며 동시에 이미 있었던 일을 마무리하는 시간이 됐던 것이다. 이 영화는 많은 사람이 싫어하는 '그 시간'이 오히려 일상의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음을 말하려는 듯하다.

사실 오후 3시는 하루의 어느 쪽에서 봐도 중심인 시각이다. 아침으로 따지면 오전의 마무리 시간일 수 있고 오후로 보자면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식어버린 커피 같은 시간일 수도 있지만 이미 싸늘해진 커피에 대한 미련만 버리면 따끈한 코코아를 새롭게 마실 수 있는 시간이다.

중년의 나이도 '오후 3시'와 닮았다. 사르트르가 '오후 3시는 무언가를 하기에는 너무 늦고 포기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라고 했듯이 중년이 꼭 그렇다.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엔 왠지 어정쩡하고 애매하며,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기에는 너무 지루하고 나른하다. 퍼지고 싶은 유혹이 상존하는 것도 오후와 흡사하다. 오후의 태양처럼 적당히 익고 알맞게 풀이 죽어있는 것도 그렇다.

문제는 오후 3시의 어정쩡함이다. 파도 속으로 뛰어들며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아직 3시가 되지 않았다'며 고함지르는 영화 속 청년의 절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중년에게 마치 이렇게 외치는 듯하다. 지금부터 마냥 밤을 기다리기에는 너무 이른것이 아니냐고 . 익숙한 커피 대신 새로운 코코아를 찾아보라고- .

한낮의 태양을 지나 이미 익을 대로 익은 중년에게 새로운 시도는 손해볼 것 없는 거래다. 거침없이 문을 두드릴 충분한 이유이기도 하다.

오후 3시. 하릴없이 밤을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있다.

sjki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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