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임을 다한 명예로운 퇴장이 은퇴이지만 야구선수에게 은퇴란 달갑지 않은 불청객이다.
루 게릭은 17년 동안 뉴욕 양키스에서 뛰면서 2천130경기 연속 출장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그는 양키스를 세계 최고의 야구 명문팀으로 이끈 뛰어난 선수였지만 36세에 이르러 쉬운 플라이볼을 놓치는 등 자신의 신체에 이상 증세가 나타나자 정든 야구계를 떠나야 했다. 은퇴 연설에서 뛰어난 선수들과 함께 야구를 해온 자신을 행운아라고 역설했지만 2년 뒤 병상에서 38세의 젊은 나이로 팬들의 아쉬움 속에 생을 마감했다. 아직도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루 게릭병' 때문에 야구를 접은 그는 정말 행운아였을까?
1루로 달리는 길이 오르막처럼 느껴질 때가 바로 은퇴할 시기라고 베이브 루스가 말했지만 정말 그 시기가 되어 은퇴하는 선수는 거의 없다. 타자는 공이 두렵게 느껴질 때, 투수는 러닝이 싫어지면 은퇴를 생각할 때라고 선수들은 농담처럼 얘기하지만 그때도 흔쾌히 물러나는 경우는 드물다. 아직 더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퇴직을 강요하는 오늘날의 사회처럼 대부분은 필요성이나 가치의 차이로 밀려나는 것이다.
은퇴란 선수들에게도 부담스럽지만 구단 입장에서도 여간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과거에는 트레이드를 통해 이 난제를 해소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돌아보면 한 시대를 풍미했던 수많은 선수들이 그들이 남긴 업적에 비해 너무나 초라하게 무대에서 사라져갔다. 한대화나 김성래, 이종두, 박충식 같은 베테랑 선수들도 떠밀리듯 트레이드되면서 결국은 은퇴식도 가지지 못한 채 그라운드를 떠났다. 어쩌면 자연의 이치일 수도 있고 게임의 법칙일 수도 있지만 시작과 과정에 비해 끝은 허무한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트레이드가 어려운 베테랑 선수들의 은퇴는 더 어려운 문제다. 정리 단계에 다다랐다고 여겨지는 선수들이 선수 생활 연장을 원하면 구단은 대단히 골머리를 앓는다. 연봉도 높은 데다 세대 교체가 시급해 결단을 미룰 수 없지만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선수 본인이 완강히 고집하면 구단과 충돌이 불가피해지고 자연히 팀의 이미지도 나빠지게 된다.
삼성 라이온즈의 프랜차이즈 스타 이만수 역시 선수 생활을 더 하고 싶었지만 서정환 감독이 부임, 새로운 팀을 구상한다는 이유로 정든 팀을 떠나야 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많은 여운과 잡음을 남겼다. 서 감독은 후에 기아 타이거즈로 부임해 베테랑답지 않게 부진한 이종범의 은퇴를 시사하다 본인의 거부로 엄청난 후폭풍이 일었고 끝내 시즌 중도에 사임하고 말았다. 구단이 해야 할 일을 현장에서 맡으려다 낭패를 본 것이다.
많은 실패와 변화를 거쳐 오늘날에는 선수들의 은퇴를 구단에서 주도면밀하게 진행한다. 코치직을 제의하거나 직원으로 활용해 은퇴의 부담을 덜어주지만 여전히 은퇴란 선수들에겐 두렵고 예민한 문제다.
야구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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