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병실에서

입력 2009-09-07 16:08:58

최근 들어 병실 회진을 하다 보면 처음에 낯설어 보였던 간병인이 이제 자연스럽게 느껴지고 점점 많이 보인다. 옛날 우리 나라 유교 문화에서 부모나 가족의 간호를 남에게 맡기지 않고 반드시 자식이나 가족 중 누군가가 병 뒷바라지를 해야 된다는 인식이 강해 생면부지의 남의 손에 내 가족을 맡긴다는 것은 불효고 남들에게도 손가락질 받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핵가족, 맞벌이 혹은 부모자식 간 타지역 주거 등등의 이유로 요새는 당당하게 이분들의 도움을 요청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리고 환자가 중환일수록 의사 입장에서는 어설픈 보호자보다 일정 간병 교육을 받은 간병인들이 더 믿음이 갈 때도 있다. 이런 간병인 제도처럼 의료 환경도 시대의 변천에 따라 많이 바뀌어가고 환자를 따라오는 보호자의 모습도 세월에 따라 많이 달라진 것을 느끼게 된다.

내가 처음 병원에 수련의로 있을 1980년대 말 당시만 해도 가족의 경제력이 가장에 집중되어 있어 그 가족의 가장이 그 가족의 운명이나 마찬가지였다. 즉, 집안의 유일한 수입원인 가장이 치명적인 질병으로 사망하거나 장기간 입원 등으로 경제 행위를 할 수 없게 되면 그 가족은 엄청난 경제적 시련을 겪기 때문에 가족들은 사력을 다해서 가장을 간호하는 것이 그 당시는 일반적이었다. 그래서 효자, 효녀들을 자주 볼 수 있었고 어떤 때는 너무 지극정성으로 간호를 하는지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애틋한 가족애를 느끼게 하는 가족도 많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그 양상이 많이 달라졌음을 실감하게 된다. 산업화 사회를 거치면서 일자리가 많이 늘어나고 또한 가계 지출도 많아져 가장 한 사람만으론 가계를 운영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게 되어 현재는 가족 구성원 누구나 직장을 가지는 것이 당연시되고 이로 인해 가장에게 집중되었던 경제 집중력도 점점 분산되는 만큼 가장의 가족 내 비중도 점차 줄어들게 되었다. 이런 가족 구성원들의 경제적 독립 현상인지는 몰라도 요새 가장이나 부모가 중병에 걸렸다고 하면 옛날처럼 가장에 대한 정과 '이제는 어떻게 돈 벌어 먹고사나' 하는 현실적인 문제로 울고불고하는 자식들은 볼 수가 없고 그저 '얼마나 더 살 수 있냐?'는 질문이 전부다. 그것도 환자 앞에서…. 즉, 부모 중 누가 중병에 걸려도 크게 답답해하는 자식들이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병에 걸리면 가장 불쌍한 사람은 환자 본인이고 그 다음으로 불행한 사람은 그 배우자라는 생각이 요새 자꾸 든다. 그러나 이것도 환자가 보험에 가입되어있다면 상황이 또 달라진다. 얼마 전 간암으로 사망한 환자의 부인이 사망 진단서를 받으러 내게 오면서 우는 것도 아니고 웃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표정을 지었다. 왜냐고 물어봤더니 그 아주머니 왈, 남편이 사망하면서 3군데 보험 회사에서 생각지도 않은 돈이 많이 나와서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을 하였다.

김성국 경북대 병원 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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