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이제 바람을 표절할래
잘못 이름 붙여진 뿔새를 표절할래
심심해 건들대는 저 장다리꽃을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는 이 싱싱한 아침냄새를 표절할래
앙다문 씨앗의 침묵을
낙엽의 기미를 알아차린 푸른 잎맥의 숨소리를
구르다 멈춘 자리부터 썩어드는 자두의 무른 살을
그래, 본 적 없는
달리는 화살의 그림자를
용수철처럼 쪼아대는 딱따구리의 격렬한 사랑을 표절할래
닝닝 허공에 정지한 벌의 생을 떠받치고 선
저 꽃 한송이가 감당했던 모종의 대역사와
어둠과 빛의 고비에서
나를 눈뜨게 했던 당신의 새벽노래를
최초의 목격자가 되어 표절할래
풀리지 않는, 지구라는 슬픈 매듭을 베껴쓰는
불굴의 표절작가가 될래
다다다 나무에 구멍을 내듯 자판기를 두드리며
백지(白紙)의 당신 몸을 표절할래
첫 나뭇가지처럼 바람에 길을 열며
조금은 글썽이는 미래라는 단어를
당신도 나도 하늘도 모르게 전면 표절할래
자, 이제부터 전면전이야
정끝별의 언어가 달라졌다. 심심한 언어로부터 우주의 속과 겉을 툭툭 건드리는 발랄하고 깊이 있는 언어로 달라졌다. 과 와 같은 의태어와 의성어 사이를 유쾌하게 오고간다. 하지만 언어에 대한 천착이 아니라 사물의 본성에 대한 천착이라 할 개성적 개안이다. 사물 속에 시인이 들락거리고 삶 속으로 들락거리는 사물들이 보인다. 시집 은 그러한 사물/삶의 언어들로 가득찬 성찬의 놀라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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