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용자동차부품, 얼마나 쓰고 있나요

입력 2009-09-07 08:30:10

#A씨는 주차하려다 승용차 조수석 쪽 타이어를 기둥에 심하게 부딪쳤다. 차량 정비업체 직원은 앞 차체는 물론 조수석 문짝도 살짝 긁혔으니 교환하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다. 어차피 보험사에서 수리비를 지급한다고 생각한 A씨는 경미한 상처를 입은 문짝도 새것으로 주저 없이 교체했다. 깨끗한 문짝은 중고품이 된다.

#2000년에 출고된 차를 타는 B씨는 최근 접촉사고가 난 뒤 새 차를 구입해야 했다. 수리비가 폐차 비용보다 곱절이나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싼 수리비는 새 부품을 고집했기 때문이다. 비싼 새 부품에 비해 재생 부품을 쓰면 수리비가 3분의 1로 뚝 떨어지지만 중고부품에 대한 믿음이 떨어져 '애마'를 버렸다고 했다.

#13년 된 차를 모는 C씨는 요즘 정비소 찾는 일이 잦다. 자주 정비소를 찾으면서 얻은 경험은 굳이 새 부품을 고집하지 않는다는 것. 그는 "차도 오래됐고 새 제품을 달면 손해 같아 가격에 비해 성능도 괜찮은 중고제품을 애용한다"며 "많은 운전자가 중고부품의 질과 안전에 대한 의문 때문에 주저하지만 실제 써보니 나쁘지 않다"고 했다.

순정부품이 장악하고 있는 국내 자동차부품시장에 재활용부품이 꿈틀대고 있다. 해마다 부품보상비가 늘고 있는 국내 손해보험사들이 환경보호와 자원절약이라는 정부 정책을 등에 업고 재활용부품 활성화에 나선 것. 사고차량의 중고부품 재활용률이 높아질 경우 소비자는 순정부품과 재활용부품이라는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데다 보다 싼값에 양질의 제품을 구입할 수 있어 자동차부품 시장의 혁명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말했다. 또 손보사들도 보험금 지급 규모 감소의 이득을 챙길 수 있으며 환경보호와 자원절약이라는 효과도 기대되고 있다.

◆걸음마 수준인 자동차부품 재활용

국내 손해보험사들이 2007년 1년 동안 지급한 자동차부품 비용은 모두 1조3천억원. 이 가운데 600억원가량은 피해가 크지 않아 새 부품으로 교체하지 않아도 되는 비용이라는 게 손보사들의 분석이다. 폐차업계에 따르면 2만개가 넘는 부품이 어우러져 달리는 자동차가 사고가 날 경우 우리나라는 통째로 폐차가 된다. 2만개의 부품 중 멀쩡한 대다수 부품이 그냥 고철이 되는 셈. 자원 재활용이 세계적인 이슈로 뜨고 있지만 국내 자동차부품 시장에서 재활용부품의 활용률은 2%대에 머물고 있다.

재활용부품 활용률이 낮으면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부담이 전가된다. 최근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품질이 비슷한 순정부품과 재활용부품을 비교했을 때 재활용부품의 가격은 순정부품의 26~37% 수준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의 운전자가 안 써도 될 곳에 3, 4배나 비싼 부품을 사용하고 있는 것.

자동차 10년 타기 시민운동연합 관계자는 "재활용부품의 활성화는 소비자에게는 경제적인 효과를, 전지구적으로는 환경오염 감소와 자원절약을 가져다줄 수 있다"며 "2007년 자원순환법이 시행된 만큼 정부가 직접 나서서 재활용부품에 대한 안전성 및 사용률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외국에서는?

재활용부품 사용 활성화는 재활용부품에 대한 소비자 신뢰가 관건이다. 미국 등 선진국들은 양질의 재활용부품에 대한 신뢰를 높이기 위해 인증기관을 도입했다. 미국자동차부품인증협회인 카파(CAPA)는 정비업체, 소비자단체, 보험사, 유통업체가 함께 만든 충돌수리용 비순정품 인증기관이다. 이곳은 불량의 비순정품을 가려내고 안전한 제품만 인증하고 있어 소비자는 보다 좋은 제품을 싼 가격에 살 수 있는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현재 5천500여개의 부품을 인증했다.

일본은 2001년 재활용부품 활성화를 위해 일본재활용부품판매단체협의회(JAPRA)를 설립했다. JAPRA가 양질의 재활용부품 공급을 맡고, 손보사들도 재활용부품을 사용할 경우 보험료를 5% 할인하는 상품을 잇달아 내놓으면서 소비자들의 재활용부품에 대한 신뢰도가 급증했다. 현재 일본의 자동차부품 재활용률은 90%를 넘어섰다. EU는 2000년 들어 자동차에 대한 재활용 정책을 대폭 강화해 사고차량의 수리작업에 85% 이상을 재활용부품으로 이용하도록 하는 등 자원 재활용에 열심이다.

◆국내도 스타트

국내에서도 현대모비스가 독점하고 있는 자동차부품 시장에 재활용부품을 들고 도전장을 내민 업체가 최근 지역에서 생겼다. 대구에 본사를 두고 전국 13개 지사를 구성한 'e-카플러스'. 2004년 자동차 잔존물사업을 시작한 이 회사 이충하 대표는 "자원 재활용을 통한 친환경·저탄소 녹색성장이라는 현 정부의 역점과제를 등에 업고 손해율 줄이기에 고심 중인 삼성화재 등 손보사와 손을 잡고 재활용부품 시장에 뛰어들었다"며 "소비자들은 순정부품과 재활용부품 등 선택의 폭이 넓어져 그만큼 가격 부담이 줄어들고 국가적으로는 환경보호와 자원재활용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내년까지 자동차 부품시장의 10%를 재활용부품으로 대체하는 것이 목표라는 이 업체는 소비자들의 재활용부품에 대한 신뢰를 쌓기 위해 '자동차부품 바코드제'를 도입했다. 국내 모든 사고차량의 부품들을 데이터베이스화해 불량부품과 양질부품을 가려 소비자들에게 공급하겠다는 것. 이 업체 강성호 이사는 "현재 국내에서도 음성적으로 일부 재활용부품이 판매되고 있는데 안전성 여부가 불확실해 문제가 많다"며 "모든 재활용부품에 대한 데이터베이스화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안전한 재활용부품을 싼값에 공급하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또 "국내 13개 손보사들과 연계해 재활용부품을 사용하면 보험료를 경감해주는 보험상품도 출시를 앞두는 등 우리나라 자동차 부품시장에 재활용부품이라는 대변화가 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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