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향토음식의 산업화] ⑩지례흑돼지

입력 2009-09-05 08:00:00

담백+고소+쫄깃 "이보다 더 맛있을 순 없다"

소금구이용 지례흑돼지.목살만 떼내 두툼하게 썬 고기에 왕소금을 뿌려 구워먹는 소금구이는 육즙이 풍부해 최고 인기 메뉴다.
소금구이용 지례흑돼지.목살만 떼내 두툼하게 썬 고기에 왕소금을 뿌려 구워먹는 소금구이는 육즙이 풍부해 최고 인기 메뉴다.
매콤하고 고소하고 쫄깃한 맛이 매력적인 석쇠불고기.
매콤하고 고소하고 쫄깃한 맛이 매력적인 석쇠불고기.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가 멋스런 김천시 지례면 교리 입구. 아치형 간판에는 까만 아기돼지 두 마리가 마주보며 웃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털색이 까맣고 덩치는 작으나 특유의 담백하고 쫄깃한 맛으로 임금님 진상품으로도 인기를 끌었던 지례흑돼지다. 지례흑돼지는 1960년대에 다른 개량종에 비해 사육기간이 길고 번식률도 낮아 경제성을 이유로 도태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김천시와 지례면이 합심해 복원 노력을 기울인 결과 지례흑돼지 옛 품종을 재현, 기존 돼지 가격에 비해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는 가운데 축산물 명품 브랜드로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작지만 맛은 최고

지례흑돼지의 가장 큰 장점은 그 맛에 있다. 숯불에 잘 구운 고기 맛은 담백하고 고소하고 쫄깃쫄깃하다. 다소 질기다는 손님들도 있지만 '차지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 다른 돼지고기와 달리 지례흑돼지는 껍데기와 비계를 그대로 구워도 기름이 흘러내리지 않을 정도다. 살코기보다 비계가 더 쫄깃하다는 손님들도 있다.

마블링이 잘된 흑돼지의 목살만 떼내 두툼하고 큼직하게 썬 다음 굵은 소금을 뿌려 구워 먹는 왕소금구이는 육즙이 풍부하고 육질이 고소해 인근 김천과 구미, 대구 등지에서 단골들이 많이 찾는다. 껍질째 나오는 삼겹살과 목살·삼겹살을 반씩 섞은 주물럭은 특히 여성과 아이들이 좋아하는 메뉴. 고기는 모두 24시간 저온 숙성시켜 질기지 않고 씹는 맛이 부드럽다.

16년째 교리에서 지례흑돼지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상부가든 주인 권영숙씨가 권하는 지례 흑돼지 맛있게 먹는 법은 먼저 왕소금구이를 사람 수보다 약간 적게 주문해 맛본 뒤 주물럭이나 삼겹살을 추가로 주문하면 제대로 된 지례흑돼지의 맛을 즐길 수 있다는 것.

지례흑돼지는 외래종과 달리 순흑색에 성질이 온순하며 영리하다. 다산으로 한번에 10마리 정도 새끼를 치며, 많게는 15마리까지 새끼를 낳는다. 특히 모성애가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흑돼지 400여 마리를 기르고 있는 김인수(48)씨는 "다른 어미가 낳은 새끼를 키우는 것은 물론 눈을 마주치다가 새끼 곁으로 다가가면 새끼를 해칠까봐 데리고 도망칠 정도"라고 했다.

사육하기도 쉬워 조선농업편람에 의하면 농가에서 흑돼지를 기를 때 울타리를 쳐서 방사하거나 말뚝에 매어 길렀으며, 물이나 농산물부산물 등을 먹이로 주었다고 기록돼 있다.

그러나 고기는 탄력이 있고, 쫄깃하다. 근육 구조가 조밀해서 씹히는 맛이 있다. 특히 비계의 맛이 뛰어나다.

지례흑돼지 고기 맛은 어디에서 나올까?

지례마을 사람들은 사료와 사육방법, 주변의 수질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예부터 내려온 지례흑돼지는 산간지대에 방사하며 보리등겨 등을 사료로 줘 덩치는 일반 돼지의 3분의 1 수준으로 자그마했으나 지방분포가 상대적으로 적고 육질이 쫄깃쫄깃했다고 주민들은 떠올렸다.

1980년대 후반 지례흑돼지 복원작업에 앞장섰던 문재원(62)씨 역시 그 비결을 물과 공기에서 찾는다. 고기 맛의 기본은 물인데, 이 지역은 예로부터 감천(甘川)이라 하여 물이 달고 미네랄이 풍부하게 들어있다는 것. 문씨는 "전통 똥돼지에 제일 가까운 지례흑돼지는 철분이 많이 함유된 지하수를 먹고, 공기가 좋은 곳에서 자라 고기 맛이 특별하다"며 "지례흑돼지를 같은 사료를 주고, 다른 곳에서 키우면 고기 맛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했다.

◆토종이 최고 브랜드다

지례는 예로부터 토종 돼지로 이름난 곳. 조선농업편람에 따르면 "토종 돼지는 머리가 길고 털은 검은 색에 짧고 윤이 나며 덩치는 왜소하고 고기 맛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맛에 적합하며 체질도 강건하다"고 했다. 또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가 1927년에 발간한 '조선' 잡지에서는 "지례돼지는 골격이나 육질 모두 다른 종에 비할 수 없이 우수하다"고 서술한 정도로 각광을 받았다.

지례흑돼지는 조선시대는 물론 일제강점기 때까지 그 명성을 유지했으며, 6·25전쟁 때 명맥이 끊길 위기에 직면했으나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그러나 전쟁도 이겨낸 지례흑돼지도 경제논리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1960년을 전후해 서양종에 비해 크기가 절반에도 못 미친다는 등의 이유로 퇴출되는 비운을 맞은 것이다. 맛은 둘째이고 다른 품종에 비해 덩치가 작아 먹이만 축내는 천덕꾸러기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렇게 김천 사람들의 기억에서조차 잊혀져 갔던 지례흑돼지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80년대 후반, 지례 출신 젊은 마을지도자들에 의해 시작된 '지례돼지 복원작업' 덕분이었다. 그러나 한낱 촌락에 불과했던 지례마을의 흑돼지 복원 사업이 시작부터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었다. 당국은 물론 주민들도 멸종한 품종을 제대로 복원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하며 등을 돌렸기 때문이었다. 당시 문재원 전 지례신협 이사장과 문홍련씨 등이 복원작업에 앞장섰던 주인공. 이들은 마을 어르신들의 구전을 바탕으로 복원을 시작하다 보니 어려움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천번이 넘는 다양한 품종의 교배를 통해 8년 동안 육종과정을 거쳐 주둥이가 길고 어깨가 발달한 대신 엉덩이 부분이 왜소한 모습의 전형적인 지례흑돼지를 탄생시켰다.

어렵게 복원한 지례흑돼지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1999년 '지례흑돼지축제'도 여는 등 적극 홍보에 나선 결과 흑돼지 고기를 찾는 소비자들이 늘어났다. 그러나 2002년 수해로 몇몇 농장이 떠내려가는 등 우여곡절도 있었다. 개량종과 달리 성장속도가 늦어 경제성이 떨어지고 판로도 제대로 확보되지 않아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농장 문을 닫는 농가도 속출했다. 현재 지례에서 흑돼지를 키우는 농가는 10여농가, 사육두수는 3천100여마리에 이르고 있다.

최근 김천시는 지례흑돼지를 전국 최고의 축산물 명품 브랜드로 만들기로 하고 지역 특화사업으로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 마련에 적극 나서고 있다. 고기 맛이 국내 재래돼지 중에서도 최고여서 브랜드 가치가 충분하다는 판단 아래 지역특화사업으로 활성화시키겠다는 것. 또 수입산 쇠고기와 경쟁할 수 있도록 흑돼지의 혈통을 보존하는 한편 사육규모 확대와 출하조직을 정비, 다변화한 유통경로를 개척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지속적인 홍보와 함께 우수 혈통 종돈 구입 및 개량사업, 품질 인증제의 도입 등도 마련하고 있다.

향토음식산업화 특별취재팀

최재수기자 byochoi@msnet.co.kr 김병구기자 kbg@msnet.co.kr 권동순기자 pinoky@msnet.co.kr 강병서기자 kbs@msnet.co.kr 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사진=프리랜서 강병두 pimnb1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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