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만강 너머 지척에 북한 산하…美여기자 잡혀간 다리 보니 섬뜩
'아! 이렇게 넘어갔구나'. 8월 29일 하루 온 종일 중국과 북한의 두만강 경계를 따라 떠난 러시아 국경까지 가면서 느낀 점이다. 얼마 전 북한에서 풀어준 미군 여기자 둘이 어떻게 북한 국경초소 인민군에 의해 붙잡혔는지 머릿속으로 그림이 그려졌다.
훈춘시에서 도문시로 가는 중간에 일행의 버스가 잠시 멈추더니, 중국 측 가이드가 잠시 몇 분만 내려보라고 했다. '솔만자교'. 이곳이 미군 여기자 둘이 잡혀간 곳이란다. '이럴수가'. 지금 당장 누구라도 넘어가면 또 잡혀갈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도로에 차를 세워놓고 30여m를 가니 이 다리가 나타났고 저 건너편엔 북한 인민군들이 무슨 곡식인지 모르지만 타작을 하고 있었다.
전 세계 언론을 떠들썩하게 했던 탓에 얼마전 CCTV를 설치해놨으며, 중국 측 다리입구에 허술한 철조망을 처 놓았다. 그래도 맘만 먹으면 1분이면 북한 쪽으로 넘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도문시 국경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리 중간에 중국 측 감시요원이 있었지만 관광객들이 와도 졸고 있었고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다만 선을 넘어서면 '어이~, 어이~'하면서 저지만 했다. 달려가면 순식간에 북한이다. '내래, 김정일 장군 만세'를 외치면 북한 쪽으로 넘어가는 것도 가능할 듯했다. 그렇게 지척이었고 실제 북한 주민들도 가난 때문에 탈북을 많이 했던 것이다.
중국 측 가이드는 1999년부터 2001년까지 북한 주민들이 굶주림에 시달렸던 때문인지 목숨을 건 탈북이 부쩍 많았다고 전했다. 특히 겨울이면 두만강 중에서도 강폭이 좁고 수심이 얕은 곳을 이용해 탈북을 많이 했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조선족 자치주 내에는 북한 사람들도 적잖게 만날 수 있었다. 이날 기자가 방문했을 때도 연길 박람회의 한 귀퉁이에서 쉬고 있는데, 북한 주민이 몰래 접촉해와 한국전쟁 당시 미군 한 병사의 군번줄과 유골이 있는데 한 번 보지 않겠느냐고 은밀히 접촉해오기도 했다. 그랬다. 북한과 중국 그리고 조선족이 서로 다른 이해관계로 어울려 살고 있는 곳이 이곳 자치주였다. 대한민국에서 온 한국인은 아마도 그들의 투자자이자 돈줄이 아닐까 여겨지기도 했다.
◆두만강 국경도시, 훈춘(방천)·도문시
좀처럼 가기 힘든 곳을 갔다.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북한이 합쳐지는 경계에 위치한 방천. 연길에서 3시간가량 두만강 경계를 따라가면 더 이상 동쪽으로 갈 수 없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중국에서 경계건물을 세워두고 북쪽으론 러시아, 남쪽으로 북한 그리고 동해바다를 24시간 감시한다. 방천 쪽에서 바라본 북한 산 너머 어딘가에는 말로만 듣던 '아오지 탄광'이 위치하고 있다고 한다.
러시아 쪽으로는 그야말로 만주벌판이다. 멀리 산 너머에 발해의 궁궐터가 있다고 하는데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두기에는 아까운 땅이었다. 세계한상연합회는 한때 그곳의 땅에 대규모 투자를 타진했으나 러시아 정부가 너무 비싼 땅값을 요구해 협상에 실패한 적이 있다.
양창영 세계한상연합회 사무총장은 "이곳은 동해바다를 접하고 있고 사회주의 3개국이 만나는 곳이라 투자에 아주 매력적인 곳"이라며 "지금이라도 러시아와 잘 협상이 된다면 개발했을 때 큰 메리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방천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는 훈춘시로 아시아에서 가장 큰 텅스텐 광산을 가고 있으며 길림성에서 가장 큰 석탄광산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천연자원이 풍부한 곳이기도 하다. 길림성의 6대 도시이자 국경통상도시이기도 하다.
훈춘시에서 도문시로 갈 때는 미국 여기자 둘이 북한 인민군에 의해 잡혀간 '솔만자교'에 들릴 수 있었다. 북한이 지척이라 취재하다보면 '다리 건너편으로 한 번 건너가볼까'라는 생각이 누구라도 들 수 있겠구나 여겨졌다. 북한 국경초소 인민군이 바로 앞에 있는데도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다리 위에 발을 디딘다면 하고 생각하니 섬뜩하다. 혹시 총에 맞을까 무서웠기 때문. 가까우면서도 마음은 멀기만 했다.
도문시로 들어가 북한과 접하고 있는 다리 역시 코앞이 북한이었다. 엎어지면 코 닿을 때가 바로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닐까 싶었다. 중국 정부에서 채용한 한 경계요원이 혹시나 관광객들이 다리 경계선을 넘지 않을까 감시하고 있었다.
도문시는 북한 함경북도 온성군과 마주보고 있는 두만강변 제1도시로 인구는 14만명이며, 조선족 인구가 용정시 다음으로 많은 56%에 이른다. 특히 도문은 길림성에서 유일하게 북한과 도로와 철로가 연결된 통상구로서 양국 수출입물자의 집산지이자 중계 운송지이기 때문에 북한-중국 간 교역이 활성화될수록 더 큰 발전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도문시 국경초소를 떠나 또다시 두만강 국경을 따라가자 북한 쪽에 산 중턱에 선명한 글자가 나타났다. '21세기의 태양 김정일 장군 만세'. 아직도 1인 독재국가의 위용이 그대로 드러난 광경이었다. 또 두만강 국경지대에 지은 북한의 집이나 건물들은 선전용이라 그런지 대체로 깨끗하고 제법 잘사는 동네처럼 보였다.
◆안중근 의사의 의거 전 주거지 '방치'
너무 초라했다.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기 전 2개월여간 머물렀던 집인데. 역사적 의미가 있는 곳인데 유적지가 아니라 어디 시골에 버려진 초가집 하나가 있는 것 같았다. 이곳 주변 정리도 되지 않았다.
올해가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역에서 거사를 도모한지 100주년 되는 해다. 특이하게도 안중근 의사의 의거일(1909년 10월 26일)은 대한민국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거일이고 그가 사형은 언도받고 숨을 거둔 날(1910년 3월 26일)은 이승만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의 생일이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그럼에도 정확히 100년 전 그가 머물던 곳은 이렇게 쓸쓸하게 방치돼 있다니 국내에서의 기념관 사업이나 안 의사를 기리는 노력이 오히려 현지에서 이렇듯 허무하게 보였다. 당시에 있던 곳도 제대로 보전·관리하지 못하면서 우물 안 개구리처럼 국내에서만 기념사업을 하고 있는 모양새다.
한국에서 온 한 여성기업인은 "안중근 의사가 의거 전 살던 곳이 이렇게 숨겨져 있는 줄 몰랐다"며 "한국 정부나 기업인 또는 민간단체에서 이곳 유적지를 새로 만드는데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곳 안 의사의 주거지는 도로 변에 표지판 하나 서 있으며 관광객이 오면 관리인 열쇠를 열어주고 구경을 시켜준다.
초가집 안에 들어서면 안 의사의 사진과 붓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그 유명한 글귀 '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 뿐 아니라 안 의사가 나라와 후손을 생각하며 썼던 많은 글들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방안에는 그가 쓰던 철제 간이침대의 골조가 있다. 마루 앞 입식 부엌에는 물 기르는 펌퍼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한편 방천 일대에는 국경지대의 한 영웅의 인물상과 재미있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오대진'이라는 러시아와의 국경협상 영웅이다. 당시 청나라 국경지대 병사들이 날씨가 너무 춥고 무서워 국경지대 비석을 안고 계속 중국쪽으로 들어와 영토를 빼앗기게 됐는데 오대진이라는 인물이 러시아와 담판협상을 해 다시 가져왔다는 일화다.
또 이 일대는 동해안과 맞닿아 있어 사구들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중국 인민들이 너무 경제적으로 어려워 이 사구의 모래를 마대에 담아 외부로 팔고 있었다. 불법이지만 막지 못한단다.
중국 훈춘·도문에서 글·사진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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