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트, 제시 오웬스보다 빠를까?

입력 2009-09-02 09:07:14

'번개' 우사인 볼트와 '전설' 제시 오웬스가 맞붙으면 누가 이길까?

자타가 공인하는 금세기 최고의 스프린터 우사인 볼트(23·자메이카). 큰 키를 이용한 학다리 주법에서 나오는 폭발적인 가속도는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다. 그가 25일 열리는 대구국제육상대회에 참가하기로 해 국내 팬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지난달 독일에서 열린 베를린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100m(9초58), 200m(19초19) 세계 신기록을 경신하고 3관왕을 달성한 볼트는 73년 전 같은 장소에서 열린 베를린올림픽에서 4관왕에 오른 오웬스가 환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미국의 제시 오웬스(1913~1980)는 고(故) 손기정 선생이 마라톤에서 우승했던 1936년 독일 베를린 하계올림픽에서 100m, 200m, 400m 계주, 멀리뛰기 등 4개 종목에서 우승한 세계 육상계의 전설적인 인물. 특히 볼트가 100m, 200m에서 세계 신기록을 달성하는 등 최고의 성적을 기록한 곳은 베를린의 올림피아 슈타디온으로 공교롭게도 오웬스가 1936년 당시 세계 신기록으로 4관왕을 기록한 바로 그 장소다. 그렇다면 볼트가 오웬스와 함께 레이스를 한다면 결과는 어떨까.

물론 단순 비교는 힘들다. 기록에서는 당연히 볼트가 앞선다. 볼트의 100m 최고 기록은 9초58로, 오웬스의 10초2보다 훨씬 앞선다. 200m도 19초19로 오웬스의 20초3보다 빠르다. 그러나 당시 경기장 트랙이나 스파이크를 비교한다면 기록 차이는 큰 의미가 없게 된다. 1960년대 후반 이전 경기장 트랙은 탄성이 없는 석탄 트랙이었기 때문에 탄력을 극대화해 '마법의 양탄자'로 불리는 지금의 합성고무 재질의 트랙과는 큰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또 기록 단축에 큰 역할을 하는 다른 요인인 스파이크 기능 역시 시간적인 거리만큼이나 차이가 커 볼트가 오웬스보다 빠를 것이라고 장담할 순 없다. 스피드를 극대화하기 위해 첨단 과학으로 무장한 초경량, 탄소 바닥의 트랙 슈즈와 고무 슈즈에서 막 벗어난 초기 형태의 스파이크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당시 오웬스도 독일의 한 작은 마을에서 제화업자로 일하던 '아디다슬러'(현재 아디다스의 전신)가 개발한 스파이크 슈즈를 착용해 덕을 본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60년 로마올림픽에서 사상 처음으로 100m를 10초00에 주파하고 우승한 아르민 하리(72·독일)가 "볼트가 석탄 재질의 트랙에서 징이 4㎝나 되는 스파이크를 신었다면 이런 기록을 낼 수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트랙과 스파이크의 차이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볼트의 폭발적인 가속력을 부인할 수는 없다. 195㎝의 큰 키 탓에 순발력을 바탕으로 한 스타트 반응은 다른 선수들에 비해 떨어지지만 학다리 주법을 이용한 가속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기 때문이다. 볼트는 학다리 주법으로 100m를 41걸음 만에 주파한 반면 2인자로 내려앉은 타이슨 게이(미국)나 아사파 파월(자메이카)은 44걸음으로, 3걸음 더 디뎌야 했다.

그래도 궁금하다. '번개'와 '전설'이 같은 시점, 같은 운동장에서, 똑같은 재질의 트랙 위를, 같은 스파이크를 신고 달리면 누가 이길지…. 이호준기자 hoper@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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