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이 씹힌다
"아이구, 어서 오이소. 여긴 산골이라 반찬이라고는 나물밖에 없어요."
문경사람들이 손님상을 내면서 곧잘 건네는 인사말이다. 남한지역 백두대간 총 640㎞ 중 110㎞가 통과하는 경북의 대표적인 산악지역인 문경. 귀한 손님상이라 해도 산비탈 밭에서 얻은 밭작물과 산채를 이용한 채식 위주의 산채비빔밥이 올라온다.
참죽장아찌, 산채묵나물, 버섯장아찌, 더덕구이, 곰취김치… . 산골마을에서 눈 덮인 긴 겨울을 지나기 위해 집집마다 산채를 활용한 월동용 음식이 다양하게 개발됐다.
주흘산과 황장산, 대야산, 희양산 등 백두대간에서는 이불삼아 덮고 자도 될 정도로 잎이 큰 곰취나물이 나기도 한다. 준령산 산채는 일반 고랭지 그것과는 크기부터 다르다. 산채밥 밥상은 손님들에겐 고기밥상보다 더 인기있음은 불문가지다.
◆청정 자연식 문경산채밥은 무공해 웰빙식
"우리의 경쟁자는 전주비빔밥입니다. 먼저 산채로 비빔밥을 특화해 전국화한 다음 지구촌 입맛을 찾아 세계로 나갈 작정입니다."
지난해부터 마을마다, 가가호호 특색있는 문경지역 산채음식을 모아 표준화하고 이를 전국 유통과 함께 프랜차이즈 사업에 나선 '문경 산채비빔밥' 대표 신순옥(57·여)씨의 포부는 대단하다.
문경 우리음식연구회 산채팀장을 맡고 있기도 한 신씨는 "청정 자연환경에 훌륭한 산채가 지천으로 널려 있는데다 폐광산 냉기를 이용한 고품질 표고버섯이 생산되고 약재와 식재료로 함께 쓰이는 문경오미자가 풍부해 산채를 이용한 채식위주의 전통음식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는 조건은 문경이 전국 최고"라고 자랑한다. 특히 전국에서도 유명한 문경도자기를 식기와 다기로 그대로 쓸 수 있고 특산화 된 약돌돼지와 약돌한우로 고품질의 육식 메뉴 개발도 가능해 어느 곳보다 청정 식자재 확보가 손쉽다는 것.
"조미료는 전혀 쓰질 않습니다. 대신 표고버섯을 우려 맛을 내지요. 세제도 쓰질 않습니다. 식기세척기로 씻고 고온으로 살균해 씁니다. 그래서 그릇이 뜨겁습니다."
문경새재 입구 유스호스텔에다 40석 규모의 시범식당을 차린 신씨는 장사를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우리 음식 연구에는 30여년의 경력자다. 소문을 듣고 식당을 찾아 온 손님들에게 비빔밥을 설명하느라 하루가 바쁘지만 음식을 소개하고 스토리텔링으로 손님들을 즐겁게 하는 일에는 소홀함이 없다.
"코스요리로 나온 부추잡채를 먼저 드셔야 해요. 노인들 기력회복에 너무 효과가 좋아 집을 부숴 헐어내고 부추를 심었다고 해서 파옥초(破屋草)라고도 불리는 부추는 말이 필요 없는 건강식품이죠. 뜨거울 때 드셔야 질기지 않습니다." 부추잡채와 함께 나오는 코스요리는 약돌돼지 수육과 약돌한우 말이, 부추·호박전과 감자옹심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에 따라 요리재료가 바뀐다. 조금 있으면 송이와 능이버섯이 상위에 올라온다.
신씨와 함께 문경 산채비빔밥을 표준화한 문경농업기술센터 김미자(41·여) 생활지도사의 이야기는 이렇다.
"문경 산촌 사람들이 봄철 산으로 들로 다니며 직접 채취한 산나물은 제철에 다 먹지 못하는 까닭에 겨울을 생각하여 삶아 말려서 '묵나물(묵은 나물)'을 만들었다. 집집마다 집안에서 통풍이 가장 잘 되는 장소에 산나물을 매달아 고이고이 보관하고 푸른 채소가 없어지는 겨울철이 되면 물에 불리고, 다시 삶고, 들기름으로 볶아서 다양한 음식재료로 사용했다. 제철 산나물로는 산업화하기 어려운 점이 많아 산촌에서 해오던 삶아말린 겨울음식 묵나물을 그대로 프랜차이즈 식재료로 선택하게 됐다."
고사리, 도라지, 취나물, 참나물, 다래순 등 다양한 산나물이 밥상 위에 올라오는 문경 산채비빔밥 밥상에는 맑은 된장국과 약고추장, 표고간장, 더덕구이, 산채장아찌, 김치, 오미자 물김치가 곁들여진다. 먼저 비빔밥 나물에 표고버섯으로 맛을 낸 양념간장을 떠얹어 살짝 비벼 먹어야 입안 가득 산채 특유의 향을 느낄 수 있다.
몇 숟가락을 그렇게 뜨고 난 다음 배즙과 약돌한우를 갈아 넣고 갖은 양념을 해 볶아낸 약고추장으로 비벼내면 또 다른 맛이 연출된다. 시키는 대로 해보니 실제로 그렇다. 표고버섯과 다시마, 멸치, 무, 대파를 넣고 육수를 충분히 우려내 간을 맞춘 된장국은 오미자 물김치와 함께 산채비빔밥엔 궁합이 잘 맞다. 반찬으로 나오는 더덕구이와 취나물, 곰치, 병풍쌈으로 만든 산채장아찌는 맛 추임새다. 들기름으로 구운 쑥전, 참죽전, 마전, 배추전, 부추전도 비빔밥과 어우러져 별미가 된다. 소고기와 돼지고기 수육 등 일부 육류음식을 빼면 영락없는 사찰음식의 담백함을 그대로 맛볼 수 있다.
◆세계화를 꿈꾸는 문경산채비빔밥
시범식당을 문경 우리음식연구회 회원들이 공동으로 운영 중인 문경산채비빔밥은 산채비빔밥 간이정식, 산채비빔밥 정식 등으로 모두 3종류의 코스요리 메뉴를 개발해두고 있다. 문경출신 대한민국 조리명장인 2호인 박병학 교수의 컨설팅으로 표준화하고 식기 또한 문경 특산물인 장작가마에서 구운 문경 전통도자기와 방짜유기를 사용, 여타 비빔밥과 차별화를 꾀했다.
로고와 상표명을 특허 출원하고 인테리어부터 표준 조리법, 식기류 관리, 종업원 서비스 등 전국 유통과 프랜차이즈 매뉴얼을 만들어 본격적인 사업화의 돛을 올렸다. 그렇지만 아직 산채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식자재 공장이 마련되지 못해 전국 체인점 개설과 대형마트와 백화점을 통한 전국 유통사업에는 나서지 못하고 있는 형편. 문경 우리음식연구회는 체인점 문의가 쇄도하고 있으나 제때 응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린다. 이 때문에 문경시도 호응에 나섰다. 문경 음식 세계화를 시정발전 중요과제로 삼은 문경시는 내년도에 5억을 지원, 식재료 공급기반을 조성할 예정이다. 농촌진흥청 한식 세계화연구단도 문경 우리음식연구회의 당찬 사업계획에 지원을 다짐하기도 했다.
2011년쯤에 전국 400개 점포 체인화를 이루겠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식당업자들의 관심은 당장 폭발적이다. 지난해 말부터 지금까지 문경 산채비빔밥 시범식당을 찾은 이들만 1천여명에 이른다. 음식을 먹어보기 위한 손님들도 연일 줄을 선다. 음식은 모두 예약제(010-4410-7256)이다.
중남미 대사 일행 30여명과 일본, 대만, 인도, 중국. 인도네시아, 프랑스 등 외국인 음식 전문가 300여명이 찾아와 산채비빔밥을 배워갈 정도로 한식 중에서도 채식의 대표적인 메뉴인 비빔밥, 그 중에도 자연식에 가까운 산채비빔밥에 대한 높은 관심도를 고스란히 보여 주기도 했다. 사업추진이 시장 호응을 따라 잡지 못하는 게 흠이라면 흠.
"오미자 물김치를 만드는데 드는 건조 오미자만 해도 연간 5만㎏을 사용합니다. 한식 산업화는 오미자 산지가격 안정에도 기여하고 있는 셈이지요."
권영묵(52) 문경시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는 "앞으로 농촌진흥청 한식세계화연구단과 함께 문경 산채비빔밥의 영양과 칼로리까지 분석·평가하는 등 더욱 보완해 세계적인 향토음식으로 보급하겠다"며 "외식산업을 통해 문경 농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여 나가 국격도 높이고 지역경제도 살리는 1석2조의 효과를 거두겠다"고 기염을 토한다.
한식 세계화 바람을 타고 기내식 등으로 외국인들에게 보다 친근하고 개발하기 손쉬운 비빔밥을 소재로 곳곳에서 세계화 사업에 참여하고 있으나 문경처럼 특화된 사례는 찾아보기 드물다. 산나물을 주 식재료로 해서 산촌 밭작물을 활용한 채식 위주의 전통음식이 잘 개발된 데다 봉암사와 김용사 등 문경지역의 전통 사찰에 근거한 사찰음식의 특성까지 결합했다. 약선음식에 가까운 문경산채비빔밥의 독특한 맛과 이미지는 지구촌 현지화와 퓨전화, 맛의 규격화에 따라 세계화 성공 여부를 결정지을 수 있어 경북지역에서 산업화에 나선 여러 전통음식 중에서도 상당한 기대를 모으고 있는 소재다.
향토음식산업화 특별취재팀
최재수기자 byochoi@msnet,co,kr 김병구기자 kdg@msnet.co.kr 권동순기자 pinoky@msnet.co.kr 강병서기자 kbs@msnet.co.kr 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사진=프리랜서 강병두 pimnb1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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