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에 펼쳐진 수천마리 고래떼 군무 '최고의 해상쇼'

입력 2009-08-22 07:00:00

울산 장생포항으로 고래관광 나서볼까

지난달 관광객들의 눈앞에 참돌고래떼의 장관이 펼쳐졌다.
지난달 관광객들의 눈앞에 참돌고래떼의 장관이 펼쳐졌다.
고래관광선 선상무대에서 한바탕 노래잔치가 펼쳐졌다.
고래관광선 선상무대에서 한바탕 노래잔치가 펼쳐졌다.
울산 장생포항에서 출항 대기하고 있는 고래관광선.
울산 장생포항에서 출항 대기하고 있는 고래관광선.

'참돌고래떼가 눈 앞에서 점핑한다. 바닷물 위로 솟구친다. 2천마리가 떼를 지어 이동하는 모습은 심장을 뛰게 한다.'

망망대해에서 볼 수 있는 최고의 장관이다. 마치 로또복권에 당첨된 듯 관광선에 탄 승객들은 흥분한다. 이것이 고래관광선의 매력이자, 울산 고래관광에 전국에 있는 사람들을 몰려들게 하는 이유다.

실제 고래관광은 시작부터 큰 관심을 끌며 벌써 한달치 예약이 끝났다. 또 휴가기간이라 주 3회 운항하던 것을 주 5회 운항으로 증편했다. 또 고래를 보지 못할 것을 대비해 고래관광선을 타고 있는 3시간 동안 지루하지 않도록 프로그램을 짜 놓았다. 선상 음악회, 고래해설사의 재미있는 이야기 등으로 고래를 보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거센 항의'는 받지 않도록 대비책을 마련해 두었던 것.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3시간의 항해가 끝나면 이내 고래특구 관광이 이뤄진다.

점심은 장생포항 인근에서 고래고기를 맛본 뒤 고래박물관과 고래연구소를 관람하면 좋을 듯하다. 생태체험관은 10월 말이면 개관한다. 고래해체장은 내년이면 완공된다. 체험관이 문을 열면 바다에서 보지 못한 돌고래 다섯마리를 볼 수도 있다. 그리고 장생포에서 승용차로 1시간가량 떨어진 반구대 암각화를 보러 가면 하루관광으로 딱 좋을 듯하다. (관계기사 6, 11면)

◆고래를 볼 확률 30%, 하지만 신나

"날씨가 좋고 파고가 높지 않아야 배가 뜰 수 있어요. 배가 뜬다고 해도 반드시 고래를 볼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글쎄요, 확률은 30% 정도로 보시면 됩니다."

지난 7월 4일 첫 항해를 시작한 울산 남구청 소속 고래관광선. 정인숙 고래관광선 담당자는 돌고래를 볼 수 있는 확률과 고래떼의 장관에 대해 설명했다.

14일 고래를 볼 수 없을 가능성이 85%라는 산술적 계산이 나왔지만, 관광객들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하나같이 고래를 본다는 기대를 안고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모두 들뜬 기분이 전해졌다.

'고래'라는 단일종목으로 특구를 지정, 관광자원화하고 있는 울산의 추진력은 대단했다. 장생포항에서 손님맞이를 하는 배는 승객 107명을 실을 수 있는 중간급 규모였다. 하루에 한 번 뜨는 관광선이지만 날씨와 파고가 허락하지 않으면 출항할 수 없다. 오전 10시가 되자 털털거리며 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날 배에 오른 승객은 90여명. 모두가 "고래다"라는 말이 터져나오길 바라고 있었다.

산업도시로 알려진 울산이었기에 배가 항을 밀치고 나왔어도 15분가량은 유조선 천지였다. 느린 속도로 이동하는 유조선이었기에 섬처럼 박혀 있는 듯 보였다. 섬이 거의 없는 동해바다에서 울산은 예외인 셈이다. 40분쯤 지나자 그제야 유조선이 안 보였다.

시속 12노트(시속 12마일=시속 18㎞)로 움직이는 고래탐사선은 장생포항에서 북동쪽으로 전진했다. 출항부터 귀항까지 3시간이 걸린다는 걸 관광객들은 알고 왔지만, 들뜬 마음은 쉽게 숙지지 않았다. 배를 타고 바다 위를 움직인다는 것만으로도 당분간 기분은 최고조에 이르기 때문이다. 일단 바닷바람이 머리칼을 가르며 불어줘 에어컨 못지않았다. 잔잔한 파도가 일었지만 해파리들이 바다를 유영하는 것도 쉽게 볼 수 있었다. 파고가 높으면 놀이공원에서 3시간 동안 바이킹을 타는 기분을 느꼈을 것이란 말도 들렸다. 그래도 승객들이 무료해할까봐 울산 남구청은 트로트 가수도 섭외해뒀다. 볼거리는 적잖았다. 고래만 나타나준다면 금상첨화.

육지로부터 16㎞ 정도 나가야 고래들이 다니는 길에 다다를 수 있다는 말이 돌고 있었다.

◆갑판장 박길문씨, "오늘도 어렵네요"

적어도 1시간 남짓은 마냥 배에 앉아 있어야 된다는 계산. 1시간 남짓 바닷바람만 쐬다 갑판장 박길문(60)씨를 만났다. 다짜고짜 "고래를 볼 수 있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14세 때부터 포경선을 타서 1986년 고래잡이가 금지될 때까지 20여년을 포경선에서 일했다는 박씨는 배에서 '고래 포착' 역할을 맡고 있었다. 누구보다 고래가 다니는 길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박씨는 육안으로 아무 것도 없는 바다를 살피다가도 금세 두 눈에 망원경을 바싹 갖다대곤 했다. 그의 눈을 따라가자 갈매기떼들이 모여있었다. 멸치떼를 쫓아 갈매기떼가 모인 것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갈매기가 모인 곳은 고래가 있을 확률이 높다는 얘기. 고래의 주된 먹이이기도 한 멸치는 고래길을 확인하는 주효한 방식이었다.

"고래가 곤쟁이(크릴새우), 멸치, 꽁치를 주로 따라 다니기 때문에 갈매기가 모이면 주의 깊게 봅니다. 그래도 오늘은 아니네요."

쓴 입맛을 다신 박씨는 1㎞ 정도 떨어진 곳에서 고래가 머리나 꼬리를 1초라도 내밀면 바로 눈치챌 수 있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이날 바다는 잔잔하기만 했다. 박씨도 그제야 20일가량 고래를 보지 못했다고 했다. 바닷물의 온도가 떨어져 고래의 주된 먹이들인 크릴새우, 멸치 등의 개체수가 확연히 줄었기 때문이었다. 평소 수온은 24~25℃. 25도 이상이면 먹이가 풍부해 매일 고래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날을 비롯해 최근 며칠간 수온은 23.5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적조가 나타날 때 수온이 26도 이상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바닷물 온도의 1도 차이는 고래의 이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실제 갈매기떼의 숫자도 눈에 띄게 줄었다고 했다.

7월 4일 첫 출항 이후 지금까지 16번 배가 떠 4번 고래를 봤다고 하니 "고래다~"라고 누군가 외치는 것도 행운인 셈이다. 관광선 관계자들은 "8월 말이 되면 수온이 예년처럼 돌아갈 것"이라며 "그때쯤이면 마음껏 고래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점쳤다.

◆전국 각지에서 온 승객, '팔도 노래방'

고래관광선이 출발하자 전국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이 '고래야 놀자'를 한번 외쳤고, 이내 선상무대가 펼쳐졌다. 트로트 가수 옥경이와 잘생긴 사회자가 분위기를 달군다. 어색하고 쑥스러워 관심 없는 듯하다 이내 일부 승객들이 분위기에 편승하며 분위기는 조금씩 달아올랐다. 퀴즈도 풀고 노래를 부르고 선물도 받는 코너에서 전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자신의 출신을 밝힌다.

전북 남원 지리산 뱀사골에서 왔다는 윤정숙(62)·윤정자(55) 자매는 선상에서 신나게 춤을 춘 뒤, 무대로 나가 '바다에 누워'라는 곡을 멋들어지게 불렀다. 경남 거제시에서 온 백남준(35·삼성중공업)씨는 방파제 길이를 묻는 문제에 대해 직업상 동물적 계측감각으로 정답을 맞힌 뒤, 울산 출신 윤수일의 '아파트'를 신나게 불렀다. 백씨의 아내와 세 자녀도 덩달아 신났다.

대구에서 온 박혜숙(41·달서구 호산동)씨는 9명의 대군을 이끌고 왔다. 박씨는 "배 안에서 전혀 지루하지 않고 즐겁고 신난다"며 "하지만 고래를 보지 못한 아쉬움 때문에 다음에 한번 더 와야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선상무대에는 서울, 경기도, 전라도, 강원도 등 전국 팔도사람들이 다 모여 전국노래자랑 대회를 하는 것 같았다.

돌아오는 길에는 트로트 가수가 노래가사 중 '고래'가 들어가는 노래를 모두 모아 메들리로 들려줘 흥을 돋웠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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