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할로 죽이고 방으로 살리고/원철 지음/호미 펴냄

입력 2009-08-19 15:03:54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은?

'달마(達磨)가 서쪽에서 온 까닭은?'

선불교에서 가장 유명하고 중요한 공안(화두)이다. 눈이 한 개라도 있고 귀가 하나라도 뚫려 있으며, 입이 있다면 한두 번은 보고 듣고 물어 보았을 말이다. 그럼에도 이 말의 뜻을 알기는 어렵다.

'여하시조사서래의(如何是祖師西來意닛고?-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은 무엇인가?)

이 화두에 대해 어떤 이는 '뜰 앞의 잣나무'라고 답했고, 어떤 이는 '앞니에 털이 돋았다'고 답했다. 또 어떤 스님은 '마른 똥 막대기'라고 답했고, 어떤 선사는 '신주 앞에 놓은 술잔'이라고 답했다. '마치 놀란 닭과 물소 같느니라'고 답한 사람도 있다. 법상 선사는 아예 '서쪽에서 오신 뜻이 없다'고 했다.

대체 무슨 소리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 황당한 이야기가 모두 '한 소식 깨친 소리'라고들 한다.

어디 이뿐인가. 선사들의 선어록은 뜬금없이 고함을 빽 지르기(할喝-꾸짖을 갈)도 하고, 냅다 몽둥이로 방(棒) 삼십대를 날리기도 한다. 무엇을 물었는데 모르겠다 싶으면 '할! 할!' 하는 것 아닌가 싶은 의심마저 든다. 이 또한 깨치지 못해 우둔한 자의 꼬투리잡기일 것이다.

한 소식 깨쳤다는 그 옛날 선사들께 21세기를 살아가는 기자가 '심조불산 지금산입 수군인용'은 무슨 말인지 아십니까, 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답할까. 경기도 용인에 있는 산에 가면 볼 수 있었던 글이다. 웬만큼 도를 통한 스님들도 모를 것이다. 한문 읽는데 익숙한 스님들이 '산불조심 입산금지 용인군수'라고 써 붙인 산의 입간판을 거꾸로 읽은 것이다.

우스갯소리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선종의 1천700개에 달하는 화두 역시 만들어질 당시에는 현실의 현장성에서 나온 일상의 이야기였고, 사람 냄새가 나는 아름다운 정신이었다. 요즘은 늘어나는 등산객으로 산불을 조심해야 하고, 어떤 곳은 입산을 금지해야 할 지경이지만 그 옛날 선사들 입장에서는 생각하기 힘든 일일 것이다. 그러니 옛 선사들이 '심조불산 지금산입 수군인용'의 '현실적 고뇌'를 알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선종의 오래된 화두들 역시 그렇다. 우리가 입으로 웅얼거리고 있지만 그 뜻이 공허하게 비치는 것은 당시의 현실에서 우리가 너무 멀리 왔기 때문이다. 천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선종의 귀한 화두이자 인간의 아름다운 정신은 신화가 되고 앵무새의 흉내가 되고, 어느새 현실과는 무관한 이야기가 돼 버린 것이다.

이 책은 지금은 신화로 박제된 선종의 화두를 오늘의 시대 정신과 현대적 감각으로 부수고 깨트려 재해석하고 있다. 그래서 그 화두에 본디 지녔던 일상의 생명력을 불어넣은 것이다. 앵무새처럼 입만 벙긋벙긋 하는 게 아니라 옛 선사의 치열한 현실적 고민, 사람 냄새 물씬 나는 일상의 이야기, 더불어 탁월한 안목으로 깨우친 지혜를 오늘날 다시 배워보자는 것이다.

그래, 어쨌거나 달마는 왜 서쪽에서 왔을까? 아줌마가 연속극 볼 시간에 밤마실 나가는 데도 까닭이 있는데 벽안의 납자(놈)가 배를 타고 이역만리 중국으로 모진 풍랑을 헤치고 왔으니 까닭이 없을 리 없다.

달마대사가 열반하여 웅이산에서 장례를 지내고 3년 뒤 송원이라는 사람이 서역의 사신으로 가다가 돌아오는 길에 손에 짚신 한 짝을 들고 홀홀히 걸어가고 있는 달마대사를 만났다.

'선사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서역으로 가노라.'

송운이 왕에게 길에서 달마를 만났으며 그가 서쪽으로 가더라고 말했다. 이미 죽은 사람이 어디로 간다는 말인가. 왕이 의심스러워 무덤을 열어보았더니 빈 관에 신 한짝만 남아 있었다. 그 유명한 '수휴척리'(手携隻履) 곧 '손에 짚신 한 짝 들고서'라는 화두의 전말이다. 어쨌거나 달마대사는 서쪽에서 와서 다시 서쪽으로 가버린 것이다. 이후 달마 대사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오신 뜻'은 중국과 한국 일본에까지 풀기 어려운 질문으로 남아 있다.

(선의 근본을 묻는 무정형의 질문에 구체적인 답이야말로 어리석다. '달마가 서쪽에서 오신 까닭'은 그 자체로 선문답이며 화두다. 달마가 서쪽에서 오신 까닭이 중국과 한국, 일본을 지나 태평양 너머 신대륙까지 화두가 돼 퍼져 나가는 것이 요체인 것이다. 구체적이고 분명한 답이 있었다면 '화두'로서의 생명은 끝나고 만다. 답을 아는데 누가 질문할 것인가. 그러니 달마대사가 서쪽에서 오신 까닭은 결국 우리 스스로 묻고 답하며 깨우치라는 말씀일 것이다.)

좀 쉬운 예를 보자.

한 바라문이 양손에 꽃을 들고 부처님을 찾아와 공양을 올리려 했다. 부처님이 '버려라'고 말씀하자 바라문은 왼손의 꽃을 버렸다. 부처님이 다시 '버려라'고 말씀하자 바라문은 오른손의 꽃을 버렸다. 다시 부처님이 '버려라'고 말씀하시자 '저는 지금 빈손입니다. 더 무엇을 버리라고 하십니까' 라고 했다. 부처님은 '너에게 꽃을 버리라고 한 것이 아니다. 네가 가진 분별심을 버려라'고 했다. 바라문은 그 자리에서 깨쳤다.

'버려라' '달마가 서쪽에서 오신 까닭은?' 등의 화두는 선문답의 전형이다. 오늘날에도 만행 중인 납자들과 방장 스님들이 이 같은 선문답을 주고받는다. 이 선문답 속에 납자는 깨우침을 얻는 것이다.

선종은 중국에서 화엄종, 천태종, 율종, 법상종 같은 많은 종파가 전성기를 누리던 시대에 등장한 후발 주자였다. 교학(敎學)을 중시하는 교종(敎宗)에 대하여, 직관적인 종교 체험으로서 선(禪)을 중시한다. 원래 선종은 석가가 영산(靈山) 설법에서 말없이 꽃을 들자, 제자 가섭(迦葉)이 그 뜻을 알았다는 데서 연유한 것으로, 이심전심(以心傳心) 불립문자(不立文字)를 종지(宗旨)로 삼는다. 종파로 성립된 것은 달마가 650년경 중국에 입국하면서부터다.

후발 주자 선종은 역사적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부처님의 사상적 정통성을 충실하게 이어받은 종파라는 근거를 제시해야 했다. 그래서 법맥도를 만들었다. 부처님에서부터 가섭 존자를 거쳐 달마, 혜능을 잇는 33조사 계보를 확립한 것이다. 이 법계로써 부처님은 선종의 제 1대 조사, 곧 대선사로 자리매김했다. 291쪽, 1만2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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