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거리 천천히 오래 걷기'는 최근 두어 해 사이 이 사회에서 소리 없이 마니아를 늘려 가는 블루오션이다. 골목 이어 걷기가 인기 얻었고 산자락 에돌아 걷기가 그렇다. 이 분야서도 드디어 선진국을 뒤따르는가 싶다. 미국에는 '트레일'이라 불리는 8만㎞짜리 도보길이 마련돼 있고 영국엔 4천㎞의 '풋패스'가 있을 정도라 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에는 18만㎞나 되는 '랑도네', 일본에는 2만5천여㎞의 '자연보도'가 있다고도 했다.
이런 길이 국내서 얘기되기 시작한 건 겨우 몇 해 전이다. 환경부가 '생태탐방로', 산림청이 '숲길'을 만들겠노라 나선 게 처음이다. 지금까지의 성과도 지리산길 5개 구간 70여㎞ 개통뿐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다를 것이다. 지방정부들까지 가세한 덕분이다. 보름여 전 운문사 경내에 열린 1.3㎞ 길이의 솔밭길이 예다. 청도군청이 6억 원을 들여 마사토길(일부 구간 나무 데크)을 튼 것이다. 경북도청은 '낙동정맥 500리 숲길'을 만들기로 했다. 그 산줄기 기슭을 따라 일반 휴양객들이 걸을 수 있게 올해 착공, 2013년 완공하리라 했다.
이런 길은 높은 곳을 향해 헉헉대며 '세로'로 오르는 등산길이 아니다. 대간'정맥'지맥 종주꾼들이 능선을 이어 걷는 마루금 길도 아니다. 이 길은 큰 오르내림 없이 넉넉하게 '가로' 이어가는 길이다. 산등성이가 아니라 산자락이나 그 아래 도로 길섶을 따라 낮은 곳을 밟아간다. 그러니 쉽게 접근해 느긋하게 걸으며 숲과 하나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맞는 길이다. 누군가 '숲길'이라 부르고 누구는 '둘레길'이라 부르는 이유다. 산자락에 생기니 '자락길', 길섶으로 이어 가니 '섶길'이라 불러 나쁘잖을 듯도 하다.
그러나 자락길 사업을 보노라면 절로 의문이 생긴다. 지리산이나 낙동정맥보다는 대구 앞산 같은 대도시 산에 더 앞서 만들어져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는 뜻이다. 그래야 높이 오르기는 버거우나 숲은 필요한 사람들에게 더 효율성 높지 않을까 해서다. 할머니 할아버지 아주머니들에게 소용되고, 뇌졸중 회복을 위해 애써 숲을 찾는 이들, 정신건강과 운동 삼아 산으로 들어가는 단체 장애인들에게 그럴 수 있을 것이다. 문득 이런 배려에 너무 소홀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우리가 그렇게 무심한 사이, 약한 사람들은 스스로 앞산 자락에 길을 만들고 있었다. '달비골' 서부터 그 대척점 고산골 입구(상동교)까지 그랬다. 10㎞ 넘을 구간(찻길로는 8.5㎞)에 좁고 험하나마 길이 나 있었다. 부실한 몇몇 곳을 손보면 큰 힘 안 들이고 멋진 자락길을 완성시키기 충분해 보였다. 찻길(순환로)서 산으로 100여m 올라간 지점을 이어가되 더 넓히고 일부 마사를 깔면 좋을 듯했다. 여러 체육공원들을 상보적으로 잇고 일부에 의자 등을 갖춘 광장을 더 펼치면 더욱 그럴 듯싶었다.
앞산 전체로는 족히 20㎞ 넘게도 자락길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됐다. 달비골 안에 별도로 이미 2㎞쯤 더 계곡길이 만들어져 있고, 거기서 청룡산'삼필봉 자락을 거쳐 대곡 뒷 구간 수목원까지 이어갈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장암사∼용두골 사이 등에 좋은 자락길이 형성돼 있으니 앞산 덩어리가 끝나는 가창 용계교 지점까지 확장시킬 가능성도 짚였다.
자락길을 만들면 샛길이 초래하는 산림 훼손도 막을 수 있을 듯싶었다. 좋고 편안한 길 놔두고 샛길 뚫을 사람은 드물 터이기 때문이다. 자락길이 잘 다듬어져 있는 달비골 입구, 충혼탑서 큰골 가는 길, 대덕맨션 앞 고산골 진입로 등에서 그 가능성이 읽혔다. 게다가 자락길 만들기를 통해서는 숲 가꾸기에 맞먹는 효과도 거둘 수 있을 듯했다. 어차피 숲길 만들려는 것이니 나무를 베어내기는커녕 잘 가꿔야 하기 때문이다. 작업 또한 삽과 괭이로밖에 할 수 없으니 더욱 어울리는 일이다.
거듭 살펴도 자락길의 수요는 충분해 보였다. 이미 인공적으로 닦인 구간들에 사람들이 물밀 듯하는 게 증거였다. 상당수 구간에 자락길들이 여러 갈래 복수로 개척돼 있는 것은 넘치는 수요를 뒷받침하지 못한 결과로 여겨졌을 정도다. 대구시청이 엄청난 돈을 들이는 중앙로 공사보다 앞서 이 일을 했어야 한다는 생각은 우연히 든 게 아니었다. 등산로보다 더 중요하고 더 애정 기울여 만들어야 하는 길이 이것일 수 있다는 생각도 마찬가지다.
朴鐘奉(논설위원)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이재명, 민주당 충청 경선서 88.15%로 압승…김동연 2위
전광훈 "대선 출마하겠다"…서울 도심 곳곳은 '윤 어게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