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 속으로 떠나는 여행
박찬부 (문학과 지성사, 2006)
본격적인 피서가 시작되었습니다. 더위에 지친 사람들이 산으로 들로 바다로 꾸역꾸역 몰려갑니다. 마치 빛을 향해 날아가는 초파리처럼 무의식적으로 움직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더위 쫓느라 여름 몇 밤을 설치다 보면 가뜩이나 짧은 밤이 더 짧아지고, 결국 비몽사몽 간 무의식의 지배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가끔씩은 무의식적 일탈이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여행보다 더 즐거울 때도 많습니다. 떠난 후의 일은 떠난 다음에 또 다른 무의식에 따르면 그만입니다. 한여름 밤의 꿈, 무한한 상상과 만날 수 있습니다. 분명 실재이면서도 실재가 아니라고 고집하고 싶은, 잡다한 언어로 아무리 설명을 하더라도 그 의미들을 완벽하게 설명해내지 못하는 꿈이 있습니다. 의식과 무의식이 혼재된 여름밤의 꿈속 여행,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이채로운 피서가 될 것입니다.
이 환상 여행을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준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적당히 높은 베개와 돗자리 하나, 그리고 한 권의 책입니다. 베개와 돗자리는 아쉬운 대로 연인의 무릎 베개도 좋고, 읽다 남은 신문지 몇 장도 좋습니다. 그러나 한 권의 책은 반드시 박찬부 교수의 『라캉: 재현과 그 불만』(문학과 지성사, 2006)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책이 있어야만 여름밤의 꿈을 허구가 아닌 실재, 그리고 그 이상의 의미있는 것으로 만들어 줄 안내자를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신분석학에서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을 일으킨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완성한 거장 자크 라캉이 바로 그들입니다. 이 두 거장은 무의식을 발견한 선구자들입니다. 인간 생애의 절반을 차지하는 무의식의 시간에 가치를 부여하고 증명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을 만나는 순간 당신이 꾼 한여름 밤의 꿈은 실재적인 슬픔과 실재적인 기쁨으로 변할 것입니다. 상상이고 상징으로 치부되는 꿈이 동시에 실재라는 것임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라캉(Jacques-Marie-Emile Lacan'1901∼1981)은 무의식을 '대타자의 담론'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무의식은 언제 어디서나 '항상, 이미' 작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만약 우리가 무의식의 편재성을 고려하여 억압된 무의식의 가공할 파괴성을 인정한다면, 무의식을 의식화하려는 노력은 우리의 행복 조건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자기 성찰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고 "너 자신을 알라"는 파르테논 신전의 교훈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무의식 자체는 헛된 환상이나 상상이 아니라 언어와 같이 구조화되어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한여름 밤의 꿈도 쉽게 망각할 '헛꿈'이 아니라 다양한 의미를 가지는 실재가 되는 것입니다.
라캉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면 많은 어휘들과 만나게 됩니다. 의식, 무의식, 결핍, 욕망, 공허, 트라우마, 나르시즘, 판타지, 상상, 상징, 실재, 거울, 우상, 타자, 자아, 초자아, 주체, 언어, 기호, 구조, 재현, 차이, 죽음, 증상, 오이디푸스, 거세 콤플렉스….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어휘 하나를 더 알게 되면 신기한 세상이 하나씩 더 보일 것입니다. 무한히 펼쳐진 무의식의 세계가 점차 뚜렷하게 느껴지게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도 만날 수 있습니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헤겔, 마르크스, 뫼비우스, 미첼, 버틀러, 사르트르, 새뮤얼스, 셰익스피어, 소쉬르, 소포클레스, 스타브라카키스, 야콥슨 등 익숙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과 많은 상상을 나누고, 그들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더 재미있는 것은 저자 박찬부 교수님입니다. 난해하기로 소문난 라캉의 정신 세계를 탐미하면서도 늘 여유가 있습니다. 지금도 세계적인 라캉 이론가인 브루스 핑크 교수로부터 분석가 수업을 받고 있다고 겸손해 하지만 이미 그는 한국 정신분석학계의 거목입니다. 반백의 터벅머리를 멋있게 세워 빗어 넘긴, 그야말로 풍모만으로도 제대로 라캉입니다.
경북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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