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없는 내 인생'(My Life Without Me, 2003년)은 2006년에 '죽기 전에 하고 싶은 10가지'라는 제목으로 개봉됐던, 스페인과 캐나다의 합작영화라고 한다.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시한부 인생'을 다룬 수많은 영화 중 하나이다.
엄벙덤벙거리는 남편과 철부지인 두 딸을 둔 23세의 주인공에게 청천벽력 같은 선고가 떨어진다. 자궁암 말기에 남은 시간은 겨우 두 달이란다. 짧기만 했던 '나 있는 내 인생'을 정리하고, 남은 기나긴 '나 없는 내 인생'을 준비하는 일상의 풍경들이 펼쳐진다. 자신의 죽음을 주변에 비밀로 한 채,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일, 남은 사람을 위해 준비할 일, 그리고 자신을 위해 해야 할 일들을 하나하나씩 챙기기 시작한다. 무척이나 담담하고, 때로는 발칙하게 말이다.
굳이 시한부 죽음을 앞둔 애절한 정한 가락이나 절절한 눈물 타령이나 늘어놓자는 건 아니다. 어디 한 번 삶에 대하여 새삼스럽게 이야기해 보자는 거다. 사는 게 뭐 별거더냐, 살아지니까 그냥 사는 것이라고, 시큰둥하게 이야기하지 말자. 너무나 익숙하게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더더욱 허투루 흘려보내는 우리네 삶을 한번만이라도, 억지로 절박한 심정이 되어서라도 뒤돌아보자는 것이다. 놀라운 신세계는 꼭 새로운 풍경 앞에서만이 아니라, 새롭게 뜨인 눈앞에서도 곧잘 펼쳐진다고. '나 없는 내 인생' 앞에서야, 비로소 '나와 함께하는 내 인생'의 심드렁하기까지 했던, 눈물겹도록 소중한 모든 사소한 풍경들에 눈이 뜨여진다. 정말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봉사 단청 구경하듯이 허둥지둥거리느라 미처 눈여겨보지 못했을 뿐이라고.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독설가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국 극작가 버나드 쇼가 묘비명으로, 스스로에게 남긴 마지막 독설이다. 깨달음은 이처럼 너무 늦게야 찾아오거나, 아니면 너무 호된 대가를 치르고 난 뒤에야 비로소 주어지곤 한다. 이럴 때 제 몸으로 부딪치는 시행착오가 아니라 남이 벌여놓은 굿판을 은근슬쩍 엿볼 수 있다는 것은, 퍽이나 안전하고도 요긴한 기회인 셈이다. 살아가는 것이 막막하고 주변의 사소한 것들로 자꾸만 짜증스러워질 때, 신파극 안 남의 죽음이라도 가끔씩, 미리 만나보자. 강 건너 피눈물 판에 기대어 스스로 작은 웃음의 의미를 되찾아본다는 것이, 속보이도록 얄팍하고 얌체 같은 짓이 아닐까, 라고 겸연쩍어지더라도 말이다. 왜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그토록 좋다는 건지 궁금하지도 않은가.
송광익 늘푸른소아청소년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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