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래보다 작은 키, 사춘기 전 진료부터 먼저
'키가 작은 것'이 질병이 아닌데도 작은 키에 대한 걱정과 부담은 엄청나다. 큰 키에 대한 선호와 관심이 갈수록 커지면서 어린이뿐 아니라 부모들의 스트레스도 가중되고 있다. 작은 키도 '질병'으로 여겨 적극적으로 치료하려는 사람이 크게 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제대로 된 정보가 부족하고 적절하지 못한 방법이 '음으로 양으로' 알려지면서 오히려 피해를 보는 경우도 적잖다.) 그렇다면 저신장 문제는 어떻게 접근하고 해결해야 할까. 양의학적인 관점에서 저신장의 원인과 진료 시기, 치료법 등을 알아본다.
◆저신장의 원인
키가 자라는 데는 유전적인 요인을 비롯, 영양 상태, 만성 질병 여부, 운동, 호르몬 및 사회경제적 요건 등 환경적인 요인이 큰 영향을 미친다.
▷유전적(가족적) 저신장=유전적인 요인은 저신장의 가장 대표적인 원인으로, 부모나 조부모 중 키가 작은 사람이 있는 경우다. 출생 시에도 조금 작고 3, 4세쯤 되면 또래와 크게 차이 나는 게 특징이다. 이후 정상적인 성장 속도를 유지하지만 또래의 평균 키를 따라잡지 못하고 '저신장'을 보이게 된다.
▷체질성 성장 및 사춘기 지연=가족력에 따라 체질적으로 성장과 사춘기가 늦어질 수도 있다. 이는 부모, 친척, 형제 중 키가 작다가 중·고교생 이후 갑자기 급성장하거나 사춘기도 늦게 시작하는 경우로, 4, 5세 이후 성장 속도가 떨어지면서 성장 지연이 나타나 뼈 나이 및 사춘기 시작이 실제 나이에 비해 2~4년 지연된다. 그러나 또래보다 키가 늦게까지 자라면서 최종적으로 성인이 됐을 때 또래 키를 따라잡는 경우가 많다. 어린 시절 저신장 양상을 보이기 때문에 체질적 성장 지연 여부를 확인해 보는 게 좋다.
▷질병에 따른 저신장=질병으로 키가 제대로 자라지 않는 경우로, 성장호르몬 결핍증, 터너증후군 등 염색체 이상, 자궁 내 성장 지연, 만성신부전 등 만성 소모성 질환, 연골 무형성, 갑상선 기능 저하증 등이 대표적이다. 만성적 알레르기 질환, 잘못된 식습관 및 영양 결핍, 과잉행동 증후군 등도 정상적인 성장을 방해할 수 있다.
◆진료는 언제 받는 게 좋나
자녀의 키가 작다고 생각될 땐 언제 진료를 받는 게 좋을까. 우선 키가 작다고 모든 경우 치료가 필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시기에 연연하지 말고 적절할 때 전문의를 찾아 진단을 받으면 된다. 이를 통해 1, 2년간 성장 상태를 지속적으로 좀 더 관찰할 것인지, '사춘기 조숙증'을 함께 치료해야 할 것인지, 적극적인 성장호르몬 치료가 필요한지 등을 판단, 원인 및 상황에 맞게 대처하면 된다. 그러나 저신장 기준에 해당할 정도로 작거나 성장 속도가 늦을 경우엔 적어도 사춘기 전에 진료를 받는 게 좋다. 또 만 8, 9세 전에 사춘기 발달이 시작될 경우엔 빨리 의료기관을 찾아 '사춘기 조숙증'을 확인해 볼 필요도 있다.
◆저성장, 어떻게 치료하나
성장호르몬 투여, 운동 및 적절한 영양소 섭취, 수술 등의 방법이 있다. 그러나 유전적인 저신장의 경우 성장호르몬 치료가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유전적인 영향이 크기 때문에 치료에 한계는 있다.
▷호르몬 치료=1958년 성장호르몬 결핍증에 처음 사용된 뒤 의학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유일한 치료법이다. 성장호르몬 결핍증 등에 의한 저신장 치료에 효과적이다. 성장호르몬 농도는 시간대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24시간 측정이나 자극 검사 등으로 성장호르몬 결핍증 여부를 확인한 뒤 치료 여부를 결정하는 게 좋다. 키가 작을수록, 나이가 어릴수록, 치료를 오래 할수록 효과적이다. 그러나 뼈의 끝 부분에 위치하고 연골세포로 이뤄져 있는 성장판은 나이가 들면서 점차 사라지고 사춘기가 지나면 닫힌다. 닫힌 성장판은 다시 열리지 않기 때문에 성장호르몬을 투여하더라도 키의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남아는 11, 12세 전, 여아는 10세 전에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 성장호르몬 분비는 잠이 든 뒤 1, 2시간 뒤 깊은 수면일 때, 심리적으로 안정돼 있을 때, 운동할 때 가장 많이 분비되는 만큼 숙면과 운동이 중요하다.
▷운동 및 영양 공급=운동이 성장에 중요한 이유는 운동 직후 성장호르몬이 많이 분비되고, 성장판에 적당한 자극을 줘 성장을 촉진하기 때문이다. 또 뼈와 근육을 강하고 튼튼하게 하고 뼈 속의 칼슘 침착을 도와주며 골밀도를 증가시켜 키가 자라는데 도움을 준다. 운동 강도는 자신의 최대 운동량의 50~70%가 적당하고 1회 운동 시 최소 20분 이상, 적어도 주 3회 이상 꾸준히 해야 도움이 된다. 그러나 마라톤, 웨이트 트레이닝 등 다리에 무리를 줄 수 있거나 지나치게 격렬한 운동은 피하는 게 좋다.
성장기엔 신체 활동뿐 아니라 성장에 필요한 영양소도 충분히 섭취해야 하기 때문에 성장기 아동들의 열량, 단백질, 칼슘, 철분 등 요구량이 성인보다 오히려 높다. 이 때문에 유지 및 당류, 우유·유제품, 생선, 계란, 콩류, 채소, 과일, 곡류, 전분류 등 5가지 기초 식품군을 충분히 골고루 섭취하는 게 중요하다. 키 성장에 좋은 한두 가지 특별한 음식은 없다.
▷수술=키를 키우는 수술법으로 '일리자로프 수술'이란 게 있는데, 다리뼈를 절단해 다리 길이를 늘이는 방법이다. 원래 사고나 선천성 기형 등으로 양쪽 다리 길이가 다른 환자를 위해 고안된 수술법이지만 사고로 성장판이 손상됐거나 성장판이 닫힌 저신장의 경우에도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여러 가지 부작용이 우려되기 때문에 바람직한 치료 방법이라고 할 수는 없다.
◆키 크는 약은 없다
시중에 '키 크는 약'이라고 알려진 제품이 많이 나와 있지만 이는 '건강보조식품'이지 '약'이나 '치료제'는 아니다. 평소 영양 섭취가 제대로 안 되거나 칼슘이 부족한 아이의 경우 이러한 제품들로 영양 보충을 하면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직접적으로 키 크는 효과가 의학적으로 검증된 것은 아니다. '먹는 성장호르몬'이라 홍보되고 있는 제품도 건강보조식품으로, 성장호르몬 자체가 아니라 체내에서 성장호르몬의 분비를 증가시키는 다른 성분이 들어있다는 게 전문가의 얘기다. 또 증명되지 않은 민간요법이나 약물투여도 조심해야 한다. 일시적으로 키가 빨리 커지기도 하지만 간혹 성장판이 일찍 닫히게 하는데 영향을 줄 수 있어 성인 키가 작아지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호준기자 hoper@msnet.co.kr
도움말·박용훈 영남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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