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모습 그대로 수백년을 견뎌낸 고택들
600년 유학의 전통이 서려 있고 옛 전통가옥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유서 깊은 성주 월항면 대산리 '한개마을'을 찾아 나섰다.
대구에서 성주로 가다 5km 정도 남겨둔 곳에서 월항'왜관 쪽으로 우회전해 3km 정도 들어가니 성산 이씨(星山 李氏) 집성촌을 알리는'한개마을' 표지석이 나온다.
응와 이원조 선생 종손인 이수학(72)씨는'한개'라는 마을 이름은 마을 앞으로 흐르는 백천(白川)에 큰 나루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인데'한'은 크다는 뜻이고'개'는 나루를 의미하는 말로 큰 나루란 뜻의 순우리말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마을 뒷산인 영취산(332m)의 줄기가 마을을 감싸듯 좌청룡, 우백호로 뻗어 내리고 마을 앞에는 백천이 흐르고 있어 전형적인 배산임수형으로 예부터 영남 제일의 길지로 꼽혀왔다고 덧붙였다. 현재는 60여 가구의 후손들이 터를 잡고 살고 있다.
한개마을은 조선 세종 때, 진주목사를 지낸 이우(李友)가 입향한 이후 560여년 동안 성산 이씨들이 모여 살아온 전형적인 집성촌으로 지금도 수백년 된 고택들이 눈길을 끌고 있다. 또한 17세기부터 과거 합격자를 많이 배출한 이곳은 월봉 이정현, 돈재 이석문, 응와 이원조, 한주 이진상 등의 이름난 유학자와 독립운동에 헌신한 대계 이승희 등의 출신지이기도 하다.
찾아간 날 마침 이 마을을 구경하러 온 수많은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이수인(52'한개민속마을보존회 사무국장)씨는 한개마을이 국가민속마을로 지정됨에 따라 이달 중순부터 안동 하회마을이나 용인민속마을처럼 초가집 복원 등 정비사업을 하고 있다며 6~10년 정도면 완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관광지로만 개발하지 말고 옛 원형을 고스란히 복원하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 마을의 자랑거리는 수백년 된 고택. 사도세자의 죽음을 추모해 사립문을 북쪽으로 내었다는'북비고택'을 비롯해 모두 9개의 고택이 문화재로 지정된 전통마을이다. 교리댁'북비고택'월곡댁'진사댁'하회댁'극와고택'도동댁'한주종택 등 대부분이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에 걸쳐 건립됐다. 또 집집마다 안채와 사랑채, 부속채 등이 대지의 특성에 따라 배치돼 내외공간의 구조가 다양하다. 가구법도 전래적 구법으로 지붕, 대청, 안방, 부엌, 툇마루 등 거의 원형 그대로의 모습이 잘 보존돼 있다. 또한 주생활을 이뤘던 가재도구나 유교적 생활공간 등 중요한 모습들이 아직도 생생하게 보존돼 있다. 교리댁은 조선 영조 사간원 사간, 사헌부 집의 등을 역임한 이석구가 지은 것으로 넓은 대지 위에 정면 7칸, 측면 1칸의 안채와 정면 5칸, 측면 2칸의 사랑채를 비롯해 대문채'중문채'서재'사당이 서로 떨어져 배치돼 있다. '一'자형의 정침을 중심으로 각 건물이 독립되어 있으면서 전체적으로'튼ㅁ'자형으로 배치된 것은 이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형식이다. 이는 태백산맥 일대의'ㅁ'자형과 남부 '一'자형 민가를 섞어 놓은 배치형식으로 민가 유형의 지역간 전파'교류'절충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유산이다.
특히 한주종택의 별채인 한주정사(寒州精舍)는 높은 석축 위에 세워져 내려다보는 주변 경관이 빼어나게 아름답다. 한주정사는 조선 고종3년(1866년) 성리학자 한주 이진상이 중건한 건물로 문간채 터를 일부러 낮춰 대문을 들어서면 정사가 자연스럽게 올려다보이게 배치돼 있다. 대문을 들어서니 뜰에는 문인송(文人松)으로 불리는 소나무와 향나무 등이 심어져 아늑한 느낌을 준다. 한주정사는 조운헌도재(祖雲憲陶齋'주자와 이황의 학문을 사숙하는 곳)라는 현판이 건물 입구에 걸려 있고 가운데 두 칸 대청을 두고 서쪽에 한 칸 방과 동쪽에 두 칸 방을 낸 뒤 동쪽 방에 잇대어 남쪽으로 한 칸의 누마루가 내어져 있다. 누마루에는 한수헌(寒水軒)이라는 별도의 현판이 있으며 이곳에 오르니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이 한 폭의 동양화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고택을 돌아보는 군데 군데 담장은 군위 한밤마을의 돌담과는 달리 여러 바위들 틈새로 흙을 발라 벽을 세운 뒤 그 위로 기와를 얹은 토석담이었다. 3.3km에 이르는 담장 사이에 난 길은 옛 선조들의 정취를 보는 듯했다. 한개마을 담장의 특징은 외곽담과 내곽담으로 나누어진 것. 고택들의 규모가 커서 그런 듯했다. 한 집의 경계를 알려주는 외곽담장 내부로 본채'사랑채 등을 나누는 내곽담장이 집 안을 다시 몇 개의 공간으로 나누고 있다. 집 안을 구경하고 집 밖으로 나섰나 싶어도 여전히 집 안인 그 구조가 특이했다.
성산 이씨는 이수빈 삼성그룹 회장, 이규석 전 국민대 총장, 이원형 전 스페인대사 등 수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전수영기자 poi2@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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