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남희의 즐거운 책 읽기]아아 아파트!

입력 2009-07-09 10:31:32

우리 시대 욕망의 아이콘, 아파트를 읽다

아파트는 욕망의 대상이다. 유명 브랜드 상표를 떡하니 달고 한밤중에도 번쩍번쩍 빛나는 아파트는 우리 시대 욕망의 아이콘이다. 1980년대 초반 혼혈가수 윤수일의 노래 '아파트'가 크게 인기를 끈 적이 있다. 지금도 노래방에서 불멸의 애창곡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이 노래는,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바람부는 갈대숲을 지나~'로 시작한다. 두고 온 고향을 그리워하기보다는 도시적 삶의 현장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이 노래의 특징이다.

우리나라 전체 주택 가운데 아파트 비율은 2005년에 이미 52.7%로 과반을 넘겼다. 아파트는 바야흐로 우리의 가장 중요한 주거형태가 되었다. 이 책을 쓴 전상인은 사회학자로서 사회구조와 계급계층 등 거대담론에만 치우치는 우리나라의 연구풍토를 비판하고, 우리의 삶과 공간, 문화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 책은 그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왜 아파트인가? 아파트, 한국을 덮다 등 우리나라의 아파트 현상을 진단하고, 나아가 아파트와 이데올로기, 아파트공간의 미시정치 등 흥미로운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우리사회에서 아파트는 곧 부이고, 부자는 곧 아파트 소유자라는 관념이 굳어지고 있다. 주거의 질적 양극화가 '고소득층=아파트, 저소득층=단독주택'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나라의 소유 중심 아파트 주거행태는 쉽게 바뀌지 않을 전망이고, 더 넓은 평수의 아파트를 끊임없이 찾아가는 지금의 관행도 계속될 것이라고 본다. 결국 우리나라에서 아파트에 산다고 할 때, 그것은 주택상품의 구매를 넘어서는 일종의 기호의 소비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고급형 대단지 아파트일수록 우리나라에서는 아파트 거주가 높은 지위와 신분을 드러내는 과시적 상징처럼 돼 있다.

우리나라 중산층 혹은 상류사회는 주로 도심내부의 아파트 지역에서 자신들 나름의 주거문화를 발전시켜 왔고, 이런 점에서 고가의 아파트 거주는 우리나라에서 사회적 지배계급에 의한 일종의 구별짓기 행위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서구사회의 전통적 상류계층이 지식이나 교양'기능'취미'감성 등이 체화된 상태를 의미하는 문화자본을 갖고 있는 반면 한국의 지배계급은 온축과 내공을 갖춘 문화자본이 없기에 역설적으로 자신들의 지위와 신분을 대외적으로 표현하고 싶어 한다. 특정 지역 내 고급아파트 집단거주가 바로 그 효과적인 수단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다. 점점 넓어지는 아파트 평수에도 불구하고, 풍수지리에서 이야기하는 주택의 1인당 적정 면적은 6평이라고 한다. 사람이 살면서 사람들로 인해 약간 비좁게 느껴지는 정도의 공간이 허전함과 불안감을 없애 주며, 집안에 생기를 돌게 한다는 것이다.

아파트가 확산되면서 점점 사라져가는 골목을 그리워하는 이들도 있다. 시인 강은교는 꽃가지가 담 너머로 늘어진 골목에서 모든 길은 출발한다고 말하면서 골목의 소멸을 아쉬워한다. 아파트 거주공간에서 주택가 골목과 가장 비슷한 기능을 하는 곳은 엘리베이터이다. 그런데 엘리베이터의 숨은 역할은 골목과는 크게 다르다. 그곳은 시선의 교환을 가급적 피하는 무관심과 침묵의 공간이다. 아파트 확산 이후 한국사회에는 익명성이 심화했다. 아파트 내부에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거나 감추는 일이 보편화한 것이다. 하지만 아파트는 여차하면 고립된 섬처럼 살다가 필요하면 섬을 연결할 수 있는 개폐식 삶의 개연성이 장점으로 꼽히기도 한다. 이웃에 산다고 무조건 사촌이 돼야 하는, 이웃사촌을 규범화하는 공동체의 무게나 압력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작금과 미래의 아파트 전성시대를 바람직한 것으로 보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은 아니다. 아파트 일변도로 진행되는 고급 주거시설들이 후손에게 물려줄 문화유산이 될 수 있을까라고 저자는 묻는다. 무엇보다 '미쳤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아파트 가격은 한 개인이 자신의 힘으로, 정상적인 방법으로 주거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특히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처음 진출하는 젊은이들에게 주택문제는 엄청난 진입장벽으로 다가온다. 교육문제와 함께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시급한 사회현안이 된 주택문제, 그 한가운데 아파트가 있는 것이다.

새벗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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