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계속되는 병마에 지쳐가는 허말분씨 모녀

입력 2009-06-24 08:46:20

▲ 2002년 이후 계속 찾아오는 병마에 허말분씨 모녀는 지쳐가지만
▲ 2002년 이후 계속 찾아오는 병마에 허말분씨 모녀는 지쳐가지만 "행복한 날은 반드시 올 것"이라는 희망으로 힘겨운 싸움을 계속해가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남들은 한 번도 앓기 힘든 중병이 왜 우리 딸에게만 이렇게 겹쳐 오는 건지…."

허말분(63·여·대구시 남구 이천동)씨는 병실 침대에 누워 앓고 있는 딸만 보면 가슴이 무너진다. 28세 늦은 나이에 어렵게 얻은 외동딸. 낳은 지 100일도 채 되지 않아 남편이 세상을 떠나 혼자 천신만고를 겪으며 애지중지 키워 온 딸이 병원을 들락거린 게 벌써 7년째다. 병명은 여러 번 바뀌었다. 암이 종류를 바꿔가며 4번씩이나 발병한 것이다.

허씨의 딸 황민유(가명·35)씨는 2002년 유방암과 갑상선암을 시작으로 병원을 집처럼 드나들고 있다. 왼쪽 유방을 절제해야 했고, 오른쪽 목덜미에 있는 갑상선 암세포 적출 수술을 또 한번 더 견뎌내야 했다.

'암과의 싸움이 이제 끝나가나 보다'며 한숨을 돌린 2003년에 황씨는 심한 두통을 앓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감기인 줄 알고 며칠 쉬어봤지만 급기야 구토 증상까지 나타나며 응급실로 실려갔다. 병원에서는 뇌종양(교모세포종)이라고 했다. 무려 8시간의 긴 수술을 받는 동안 엄마는 수술실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려야 했다.

지난해에는 급성골수성 백혈병까지 얻었다. 갑자기 얼굴이 창백해지고 현기증과 호흡곤란 증상이 나타나 병원으로 실려간 후 백혈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병원에서는 "발병 경위가 명확하지는 않지만 뇌종양과 백혈병은 별개의 증세"라며 "항암치료 과정에서 유전학적으로 백혈병이 생길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백혈병 증세가 악화되면서 당분간 갑상선암 치료는 손을 놨다. 체력이 워낙 떨어진데다 백혈구, 혈소판 수치까지 정상이 아니어서 더 이상 치료를 진행할 수 없었던 것.

긴 투병생활에 집안 살림은 거덜났다. 이제는 골수이식을 할 비용조차 마련할 길이 막막하다. 지난달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돼 국가의 지원을 받게 됐지만 그래도 1천만원 이상의 비용이 든다고 했다.

지금껏 수없이 병원을 들락거리느라 써 버린 병원비만 1억여원. 유방암과 갑상선암 수술에만 5천만원이 들었다. 이 과정에서 60㎡(18평) 아파트까지 팔아 치료비에 보탰다. 식당 청소와 허드렛일을 하며 겨우겨우 마련한 아파트였지만 도리가 없었다. 지금은 월 10만원짜리 사글세 방에 살고 있다. 허씨는 "남편 없이 혼자 힘으로 키운 딸에게 미안해 변변한 집 한칸이라도 마련해 주려고 몸이 부서져라 일했는데 병원비로 어이없이 날려버리고 기초생활수급자 신세가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7년의 투병생활에 딸은 결혼 시기마저 놓쳤다. "아프기 전에는 결혼할 상대가 있었는데 병마와 싸우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떠나가버렸다"는 것이다. 허씨는 "언제 완쾌되고 결혼해 가정을 꾸릴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주사바늘에 멍이 시퍼렇게 든 딸의 손을 만지작거렸다.

그래도 허씨가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웃음을 잃지 않는 딸 덕분이다. 엄마 몰래 숨어서 눈물을 훔치기도 하지만 엄마 앞에서만은 한없이 씩씩한 딸이다. "엄마, 나 알지? 내 별명이 '장군'이잖아. 지금껏 견뎌낸 수술만 몇 번인데 이까짓 백혈병에 질 수야 없지. 내년 이맘때쯤이면 우리 웃으면서 살 수 있을 거야"라고 오히려 엄마를 다독여주는 딸이 고맙고 또 애처롭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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