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일 대학과 책]질투의 세계사

입력 2009-06-24 06:00:00

야마우치 마사유키/김해용,이선이 옮김 (이너북, 2009)

'사촌이 논 사면 배 아프다'는 옛말이 맞는 모양입니다. 종속의 근대와 6'25전쟁의 참화를 딛고 이제 겨우 살만해졌는데 시기하는 이웃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1998년의 아시아 금융위기에 한국이 당한 억울함도 따지고 보면 주변 강국의 질투 때문입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왜 하필 한국이었을까'라고 회의합니다. 부지런히 일하고 알뜰히 모은 죄밖에 없는 한국 사람들인데 어느 날 갑자기 한푼 두푼 모은 재산을 거품이라 하여 통째로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영문도 모르고 졸지에 당한 일이었기에 시종(始終)을 몰랐습니다. 정신을 수습하고 '반성'을 했지만 '자기 책임'이라는 결론뿐이었습니다. 그리고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라는 명목으로 또다시 똑같은 일을 당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지난 50여년 동안 한국은 전쟁의 폐허와 냉전의 억압 속에서도 한강의 기적을 일구었고, 월드컵의 신화를 만들었습니다. OECD 회원국이 되었고 최근에는 G20의 일원이 되는 수준으로 부상했습니다. 제3자의 눈에는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인 동양의 전쟁터, 한국이 상상하기 힘든 발전을 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일이 수월하게 잘 풀리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의 행운을 싫어하는 감정을 질투라고 한다면 결국 한국은 '질투'에 당한 것입니다. 개미처럼 부지런한 한국에 대한 극단의 시기가 분명합니다. 그러고 보면 한국의 교육제도를 벤치마킹하라고 했다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말도 꼼꼼히 되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질투'를 흔히 여자의 특권이라고 하여 개인적 감정으로 치부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역사 구석구석에는 남자의 질투가 국가정책으로 발현되어 역사를 바꾸게 한 사례가 많습니다. 야마우치 마사유키(山內昌之) 도쿄대학 대학원 교수의 저서 '질투의 세계사'(이너북, 2009)를 보면 재미있는 질투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습니다. 책 내용을 보면 질투의 심리와 그 사례들이 조목조목 설명되어 있습니다. 한자 연구가인 시라카와 시즈카의 말을 빌리면 질투의 질(嫉)은 질병을 의미하는 질(疾)에 계집녀(女) 변이 붙은 것이라고 합니다. 시기란 뜻의 투(妬)에도 역시 계집녀(女)변이 붙어 있습니다. 그래서 질투는 여자가 특히 심한 것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질투가 여자의 전유물일까요? 처용가에 나타나는 남자의 관용이 과연 진실일까요? 혹시 플라톤이 역사를 움직이는 동력으로 꼽은 욕망, 이성, 티모스 가운데 가슴에 해당하는 티모스가 바로 질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요? 티모스가 비분, 강개, 기개를 의미한다고 하지만 그 근원은 바로 질투, 시기하는 마음일 것입니다.

알렉산드로스는 자신의 부하들에 대해 질투심이 몹시 강해 어떤 인물에게든 좋게 말하는 경우가 없었다고 합니다. 전술에 뛰어나다는 이유로 페르디카스를 미워했고, 통솔에 재능이 있다고 류시마코스를 미워했다고 합니다. 마오쩌둥은 당대회에서 자신을 사임하도록 종용한 류사오치를 결국 제명하고 맙니다. 질투는 남녀와 시대의 구분이 없습니다. 3세기경 적벽대전을 앞둔 오나라의 최고의 두뇌 주유도 위나라의 수군력을 저하시키려고 조조의 시기심을 이용했습니다. 고의로 기밀 정보를 유포하여 수군의 리더인 채모와 장윤을 처형시키게 한 것입니다.

BC 195년 전한의 창시자 고조 유방이 죽었을 당시 황태후 여후의 질투는 실로 무시무시한 공포로 나타났습니다. 고조 유방의 총애를 받아 아들을 낳았다는 이유로 애첩이던 척부인을 '인간 돼지', 즉 '인체'로 만들었습니다. 손발을 절단하는 것도 모자라 눈알을 후벼 파고 귀를 달구고 성대를 자른 후 화장실에 버렸습니다. 결국 마음이 여렸던 여후의 친아들 혜제는 어머니가 만든 '인체'를 보고 "사람이 할 도리가 아니다. 태후의 아들로서 더 이상 천하를 다스릴 수 없다"고 한탄하고는 주색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았다고 합니다.

경북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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