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최장수 의장은 1951년부터 1970년까지 18년 9개월 29일을 재임한 윌리엄 맥스체니 마틴 주니어였다. 그 다음이 앨런 그린스펀(18년 5개월 20일)이었다. 20년 가까이 장기 집권한 두 사람은 너무도 달랐다.
마틴은 이런 스타일이다. FRB의 역할은 "파티가 한창일 때 칵테일 테이블을 치우는 것"이라고 했다. 경제가 호황일 때 경기 과열로 인플레가 발생하지 않도록 이자율을 올리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린스펀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비이성적 과열'(1996년 연설)이란 말로 시장에 경고만 보냈을 뿐 이자율 인상과 같은 적극적인 조치는 한 번도 취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로이터통신은 그를 "십대 자녀를 둔 부모 같다"고 비꼬았다. 자녀의 파티를 막지는 않지만 시끄러운 소란이 도를 넘으면 조용히 들어와 주의를 주고, 파티가 끝나면 정리를 하려고 기다리는 보호자처럼 행동한다는 것이다.
이런 방법은 당시 미국경제가 새로운 황금기를 구가하고 있었기 때문에 별문제가 안 됐다. 물가는 낮은 수준에 머물렀고 두 차례의 경기 후퇴도 '공식적으로' 8개월 만에 끝났으며 일자리도 넉넉했다. 여기에다 다우지수는 1만 선을 넘었고 주가는 연평균 10% 이상 올랐다. 이 공로로 그는 온갖 찬사를 받았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1999년 커버스토리에서 그를 "세계구원위원회의 위원장이자 대표이자 고문"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성과도 전임자인 폴 볼커의 긴축통화정책 때문에 가능했다. 긴축정책으로 심각한 경기 후퇴가 발생했지만 인플레 심리를 꺾을 수 있었다. 결국 볼커가 악역을 맡아준 덕분에 그린스펀은 편하게 앉아서 그 과실을 거둘 수 있었다는 것이다.('불황의 경제학', 폴 크루그먼)
세계 각국이 경기부양 이후 경제안정을 위한 '출구전략'(exit strategy) 마련 문제로 고민에 빠졌다. 경기부양책을 밀고가자니 인플레가 걱정되고 긴축으로 돌아서자니 경기의 재하강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지난주 열린 선진 8개국(G8) 재무장관회의에서도 이 문제가 논의됐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같은 문제를 놓고 한은 총재와 기획재정부 장관이 입씨름을 벌이고 있다. 인플레 차단과 경기부양 사이에서 세계는 또 한 번 힘겨운 싸움에 직면해 있다.
정경훈 논설위원 jghun31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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