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는 결코 곧게 뻗은 쉬운 길이 아니다. 그것은 깊은 숲과 같다. 길을 잃어버리기도 쉽고, 어디로 들어왔는지도 잊어버리기 쉽다." 복수를 그린 영화 '킬빌'에서 일본도 장인 핫도리 한조의 말이다. 복수의 길은 늘 멀고도 힘들다.
흔히 최고의 복수는 용서라고 말한다. 그러나 성인이 아니고선 실천하기 힘든 일이다. 오히려 완벽한 용서는 완벽한 복수에서 나온다고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동해(同害) 보복의 원칙인 탈리오의 법칙이다. 복수는 복수를 낳는 법이다. 그러나 그것은 같은 무게의 복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탈리오의 법칙은 원시적인 것 같지만 다시 보면 균등한 보복에서 복수를 그쳐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완벽한 복수, 그리고 용서에 대한 정의이고, 복수의 합리적인 계량일 것이다.
인간사에서 벌어지는 복수는 많은 이야기꾼들에게 매력적인 소재가 되었다. 무협지는 복수의 피로 써내려간 대표적인 대중 소설이다. 아버지를 죽인 원수, 아내를 능욕한 적을 용서할 수 있을까. 통속적이라고 해도 복수의 대장정은 늘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꿈틀대게 한다.
복수의 대표적인 통속 소설이 알렉산드르 뒤마가 1845년 발표한 '몬테크리스토 백작'일 것이다. 프랑스 왕정복고 시대. 젊은 선원 에드몽 단테스가 당한 참혹한 배신과 고통, 그리고 화려한 변신과 복수는 어찌나 극적인지 읽을 때마다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든다.
아름다운 약혼녀 메르세데스와의 달콤한 사랑을 꿈꾸는 이 청년은 어느 날 재판도 받지 않고 악명 높은 감옥 샤토 디프에 갇힌다. 이유도 모른 채 지옥 같고 악몽 같은 감옥 생활을 한다. '메르세데스는 어떻게 될까, 언제까지 여기 있어야 하지?' 그렇게 13년의 세월이 간다. 그러다 옆 감방의 파리아 신부를 만나면서 음모의 전체 그림이 밝혀진다.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1900년대 들어 영상이란 장르가 생기면서 무수하게 영화로, TV 드라마로 만들어진 소설이다. '암굴왕'이란 이름으로, 또 '에드몽 단테스'라는 이름으로 출판되기도 했고, 문고판에 완역본, 만화까지 이루 헤아릴 수도 없었다.
가장 최근 만들어진 영화가 '로빈 훗'의 케빈 레이놀즈 감독이 연출한 '몬테크리스토 백작'(2002년)이다. '데자뷰'의 짐 카비젤이 에드몽 단테스로, 가이 피어스가 메르세데스를 빼앗아간 페르난도로 나온다.
복수극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설정이 '변신'이다. 대부호가 되거나 아니면 성형수술이라도 해서 변신하지 않으면 복수의 고리가 걸리지 않는다. 무협지에서도 원수의 암수(暗數)에 속아 지하굴에 떨어지고, 거기서 비전(秘典)을 구해 특출한 무예의 달인으로 변신한다.
에드몽 단테스에게 지하굴은 샤토 디프 감옥이고, 비전은 파리아 신부(리처드 해리스)이다. "제 방에는 7만2천519개의 돌이 있어요. 그걸 세 번이나 세어 봤다고요." "음, 그런 그 돌들에 각각의 이름은 지어줘 봤나?"
단테스보다 훨씬 먼저 감옥 생활을 한 파리아 신부는 정치적 음모에 의해 유배된 인물이다. 그는 죽기 전 혼신의 노력으로 단테스를 변모시킨다. 해박한 지식과 무술, 그리고 비밀스럽게 숨겨진 보물로 그를 백작으로 만든다. 그래도 가장 큰 것은 누명의 원인을 밝혀준 것이다. 그는 단테스의 말만 듣고, 그가 나폴레옹 복귀 음모의 덫에 걸린 것이며, 약혼녀를 가로채려는 절친한 친구의 배신, 돈에 눈이 먼 당그라르 남작, 냉혹한 빌포르 검사의 모함까지 모든 것을 다시 촘촘하게 엮어낸다. 이제까지 포기와 절망에 빠졌던 그는 분연히 일어나 복수를 다짐한다.
라틴어, 수학 등 지식과 함께 파리아 신부로부터 검술까지 익힌 그는 이제 복수의 화신이 된다. 불타는 복수심은 결국 파리아 신부의 죽음을 통해 감옥을 탈출하게 만든다. 그리고 섬에 숨겨진 엄청난 보물도 그의 손에 쥐어준다.
어느 날 파리의 귀족 사회에 혜성처럼 한 백작이 나타난다. '그리스도의 산'이란 이름의 몬테크리스토 백작이다. 앞다퉈 그와 사귀려고 한다. 단테스의 원수들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을 모함하고, 투옥시킨 그들을 차례로 파멸시킨다.
'삼총사'에 어이 발표된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출간 즉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뒤마는 프랑수와 피코라는 실존 인물에서 소재를 얻었다고 한다. 친구의 모함에 빠진 남자가 거액의 다이아몬드를 손에 넣으면서 처절한 복수극을 벌이는 실화였다. 뒤마는 파리 경찰 기록보관소에서 이 사건을 찾아내 프랑스 혁명의 와중에 정치적 음모에 휘말린 한 청년의 사랑과 모험, 복수라는 대서사극을 탄생시켰다. 화려한 상상력과 치밀한 구성, 독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극적인 스토리, 낯선 풍물들이 가득한 이국적인 이미지에 추리소설적인 매력까지 모두 갖추었다.
특히 낭만주의적 요소가 강했던 것은 절박한 복수극에 메르세데스와의 끝없는 사랑과 갈등을 배치했기 때문이다. 그녀 때문에 한때 복수가 흔들리기도 한다. 원수의 아내가 된, 자신의 아들을 낳은 그녀는 한눈에 몬테크리스토가 잊을 수 없는 사랑, 에드몽 단테스라는 것을 직감한다. 이 무슨 운명의 조화란 말인가. 또 아들 알베르는 어떻고. 아버지를 죽인 원수가 진짜 자신의 아버지라니.
통속의 극을 달리지만, 복수의 무상함이란 이성의 코드까지 그럴싸하게 걸쳤기에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시대를 넘어서도 호소력을 가진다.
김중기 객원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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