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을 놓치지 말라" 법정스님 법문집

입력 2009-06-10 06:00:00

[책]일기일회 법정스님 지음/문학의 숲 펴냄

"우리가 소멸을 두려워하는 것은 삶을 소유물로 여기기 때문이다. 삶은 소유가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오늘 핀 꽃은 어제 핀 꽃이 아니다. 오늘 나는 새로운 나이다. 진정 순례자나 여행자처럼 살 수 있어야 한다. 집착하지 않고 그날그날에 감사하면서 살아야 한다. 순간 속에 살고 순간 속에 죽으라. 삶 자체가 되어 살아가는 일, 그것이 불행과 행복을 피하는 길이다."

법정스님의 법문을 엮은 책 '일기일회(一期一會)'(문학의 숲)가 출간됐다. 2003년부터 올해 4월까지 길상사 정기법문과 동'하안거 결제'해제, 부처님오신날 등에 행한 법문을 풀어서 엮은 것이다. 일기일회는'지금 이 순간은 생애 단 한 번의 시간이며, 지금 이 만남은 생애 단 한 번의 인연'을 뜻하는 말이다.

스님은 연예인들의 자살이 잇따른 지난 해 10월 서울 성북구 길상사에서 열린 법회에서 일기일회라는 말과 함께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많아 안타깝다. 함께 어울려 흐름을 이루는 삶의 대열에서 자기 감정대로 이탈하는 것은 결코 명예스러운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스님은 또 사찰과 종단을 둘러싼 현실을 비판하면서 수행자는 자아성찰과 무소유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2007년 10월 가을 정기법회에서 스님은 '속(俗)이 성(聖)을 걱정하는 시대가 되었다. 부처님은 생존 시에 한 벌의 옷과 한 개의 밥그릇으로 일곱 집을 탁발해 음식물을 구했고, 그 제자 가섭은 마을 밖 쓰레기장에서 주운 천을 꿰매서 만든 분소의를 입고 평생을 살았지만, 오늘의 한국 불교는 재물이 넘치고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고 비판하고 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서기가 몹시 부끄럽고 민망합니다. 최근 불교 종단 일각에서 주지 자리를 놓고 다투는 작태가 알려짐에 따라, 같은 옷을 입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세상에 대해 실로 면목이 없습니다. 무엇을 위해 부모 형제와 살던 집을 등지고 출가했는지 거듭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중략) 승가의 생명은 청정함에 있습니다. 그래서 지극한 마음으로 청정 승가에 귀의하는 것입니다. 청정성을 잃었을 때는 더 이상 승가가 아닙니다."

법정스님은 2004년 4월 법회에서 '남의 허물을 보지 말라. 남이 했든 말았든 상관하지 말라. 다만 너 자신이 저지른 허물과 게으름만을 보라'는 법구경 법문을 인용하면서 함부로 꾸짖거나 흉보지 말라고 강조했다. 허물을 감싸주고 덮어주는 용서가 사람을 정화시키고 맺힌 것을 풀어준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용서의 미덕이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남의 결점만을 들추는 사람은 남이 지닌 미덕을 볼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든 결점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결점만 들추면 그 사람이 지니고 있는 미덕을 놓치게 됩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법정스님 법문의 일관된 주제를 알 수 있다. 삶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순간순간 살고 있는 이 삶은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 우리는 살아야 하는가. 나는 진정 인간답게 살고 있는가.

스님은 "죽은 화두를 갖고 헛되이 시간을 보내지 말라. 순간순간 깨어 바로 그 자리에서 살아있는 화두를 가지고 정진하라. 언제 어디서 살든 한순간을 놓치지 말라. 그 순간이 생과 사의 갈림길이다"고 강조했다. 390쪽, 1만5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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