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1일부터 3일까지 제주도에서 한국과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10개국은 대화관계 수립 20주년을 기념,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를 개최한다. 이 회의는 우리 나라에서 개최되는 최초의 대규모 동아시아회의로 국제적 위상을 높일 수 있는 좋은 기회이자 아세안이 우리의 경제 및 외교안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점에서 특별한 관심과 기대를 모으고 있다.
아세안은 5억7천만명의 인구를 가진 동남아국가 연합체로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중국과 유럽연합(EU)에 이어서 제3의 교역대상국이며, 제2의 해외투자대상이다. 또 국제정치경제 및 외교안보적 측면에서 아세안은 아시아'태평양지역 최초의 공식적 다자안보협력체인 아세안지역포럼(ARF), 동남아와 동북아의 통합협의체인 동아시아정상회의(EAS) 및 아세안+3(한국'중국'일본) 등을 실질적으로 주도하면서 동아시아지역의 국제정치경제 관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아세안이 우리 경제와 안보에 아무리 중요한 파트너라고 할지라도 서로가 윈-윈 할 수 있는 외교전략을 강구하여 추진하지 못한다면 정부의 의욕만으로 그 성과를 기대할 수는 없다. 지난 참여정부는 집권초기'동북아중심국가론'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의욕적으로 동북아외교를 추진하려 했지만 오히려 중국과 일본 등 주변 국가들의 우려와 경계심을 유발시켜 스스로 포기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또한 현 정부도 이미 작년 7월 ARF회의를 통해 북한에서 일어난 '금강산 피격사건'을 이슈화하려다가 실패하였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북한이 10'4남북정상선언을 가지고 맞불작전으로 나오자 결국 정부는 양측의 제안을 모두 철회하자는 것으로 후퇴했다. 그 결과 현 정부가 마치 지난 정부의 합의사항인 10'4남북정상선언을 부정하는 인상을 심어줌으로써 국제적 신뢰도를 떨어뜨렸다.
이처럼 민감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주변 강대국이나 우리의 국제적 위상을 고려하지 않는 동북아중심국가론과 같은 일방적인 선언이나 아세안의 성향 및 북한과 아세안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았던 ARF에서의 실패 경험이 입증하듯이 치밀한 검토와 준비 없이 의욕만 앞서는 즉흥적인 외교는 국익은 고사하고 국가적 신뢰만 추락시킬 뿐이다. 흔히 통치자는 '외교가 내정의 연장'이라는 점에서 대중적 감성에 호소하고자 하는 포퓰리즘(populism)의 유혹을 받을 수 있지만, 그러한 외교는 선전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실질적 성과를 거두기는 어렵다.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인도네시아 방문에서 발표한 '신아시아외교 구상'을 이번 정상회의를 주재하면서 그 출발을 선언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 구상의 핵심은 기존 4강 중심의 동북아지역 외교에서 탈피, 범아시아지역으로 그 지평을 확장하면서 경제적 상호이익 증진과 함께 정치적으로 아시아 국가들의 대변자 역할을 통해 아시아의 중심국가로 부상하자는 것인데, 벌써 주변 강대국들의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면서 적지 않은 우려를 낳고 있다.
물론 이번 회의가 동남아시아 10개국의 정상들이 모두 참석한다는 점에서 신아시아외교 구상을 본격적으로 가동시킬 절호의 기회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전쟁에서 지피지기(知彼知己)해야 이길 수 있듯이 '총성 없는 전쟁'인 외교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아세안 외교가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이들이 비동맹중립주의 외교를 표방하면서 국제협력전략으로서는 지속적인 협의를 통한 합의, 비공식적 접근, 조용한 외교(quiet diplomacy) 등을 강조하는 이른바 '아세안 방식'(ASEAN way)이라는 독특한 접근법을 채택하고 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또 아세안은 과거 부정적인 역사적 경험 때문에 중국과 일본에 대한 경계심을 여전히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그들의 지원도 기꺼이 수용하는 양면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과 일본은 패권경쟁을 벌리면서 아세안에 이미 엄청난 영향력을 구축해 놓고 있다는 점도 한국이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외교는 상대가 있기 때문에 일방통행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시시각각으로 변화하고 있는 복잡한 국제환경을 정확하게 판단하면서 외교정책 목적의 달성에 필요한 수단을 제대로 뒷받침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외교전략의 기본이다. 따라서 정부는 이번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서 포퓰리즘에 호소하는 요란한 슬로건이나 단기 성과를 내려는 과욕을 버리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아세안방식의 조용한 외교를 통해 상호협력관계를 실질적으로 진전시킬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변창구(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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