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네이터가 처음 등장한 지 25년째. 잊혀질 만하면 나타나던 터미네이터 속편은 2003년 '터미네이터3:라이즈 오브 더 머신'으로 끝난 줄 알았더니 다시 돌아왔다. 3편에는 제임스 카메론이 없는 대신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있었지만 4편에는 둘 다 없다. 그럼 무슨 재미로 터미네이터를 보지? 하지만 걱정 마시라. 할리우드의 매력남 크리스천 베일이 주인공 존 코너 역을 맡았고, 이보다 더 무게감 있는 연기를 펼쳐보인 마커스 라이트 역의 샘 워딩턴도 있다. 박력 넘치는 액션으로 무장한 새 터미네이터를 만나보자.
◆'터미네이터:미래전쟁의 시작'으로 가는 길
이번 영화는 앞선 시리즈 3편의 시작이 되는 이야기다. 다만 시점상 3편의 마지막에 벌어진 '심판의 날'이 다가온 뒤의 스토리를 다루고 있다. 이번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전작들을 꼼꼼히 기억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미래에서 과거로의 시간 여행이 '터미네이터 시리즈'를 포괄하는 만큼 사건 일지를 익혀두면 영화를 이해하는데 훨씬 도움이 된다. 자칫 헷갈릴 수 있으니 찬찬히 읽으며 따라오시길. 서기 2004년 7월 25일, 그렇게도 막으려고 했던 심판의 날은 다가왔고, 핵무기가 폭발하며 인류의 대부분은 전멸했다. 이후 일부 살아남은 자들은 존 코너를 중심으로 저항군을 구성해 지구 곳곳에서 실낱같은 희망을 믿으며 기계와의 끊임없는 사투를 벌인다.
그리고 이번 영화의 배경이 되는 2018년이 왔다. 이 시점이 중요하다. 터미네이터 1편으로 잠시 돌아가자. T-800 터미네이터가 존 코너의 엄마인 사라 코너를 죽이려고 미래에서 나타나고, 존 코너의 아버지인 카일 리스도 미래에서 뒤따라 등장한다. 1편의 배경은 1984년이고, T-800과 카일 리스를 과거로 보내는 시점은 2029년이다. 이번 4편의 배경은 중간 시점인 2018년. 여기서 존 코너는 아버지 카일 리스를 처음 만난다. 지금 아버지를 살려야 2029년이 돼서 타임머신이 등장했을 때 과거(1984년)로 아버지를 보낼 수 있고, 그래야 엄마인 사라 코너와의 사이에 자신이 태어날 수 있다. 1985년생인 존 코너는 33세의 젊은이로 나온다. 하지만 아버지 카일 리스는 10대 소년에 불과하다. 그건 당연한 일. 그래야 10년쯤 뒤인 2029년이 돼서 과거로 보낼 때 사라 코너와 사랑에 빠지는 멋진 남성이 될테니. 현재 시점에 만나는 아버지는 10대 소년, 아들은 30대 청년. 과연 이들 부자는 영화에서 어떤 모습으로 상봉하게 될까?
◆미스터리한 인물, 마커스의 등장
다시 영화로 돌아가자. 2003년, 그러니까 '심판의 날'이 오기 일 년 전이며, 영화의 첫 장면이다. 자신 때문에 형제와 경찰이 죽었다고 말하는 범죄자 마커스 라이트가 수감된 감옥으로 한 과학자가 찾아온다. 터미네이터를 만든 시발점이 된 회사인 '사이버다인'에 속한 여성 과학자는 마커스에게 "제2의 인생을 살게 해 주겠다"며 장기 기증에 서명해 줄 것을 요청한다. 갈등 속에 서명한 마커스. 그리고 다시 15년이 흘러 이번 영화의 배경이 된 2018년이 됐다. 기계 군단의 본거지 중 하나인 레이더 기지를 습격한 존 코너는 부하들이 전멸당하는 가운데 혼자서 본부로 복귀한다. 그 과정에서 기지에 있던 마커스가 깨어난다. 마커스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기계 군단의 추격에 쫓기던 마커스는 버려진 도시에서 고군분투하는 10대의 저항군 지망생 카일 리스를 만난다. 다시 말하지만, 아직 카일 리스는 10대 소년이며, 자신이 저항군을 이끌고 있는 지도자 존 코너의 아버지가 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상태다. 쫓고 쫓기는 추격전 속에 카일 리스는 기계 군단의 본거지인 '스카이넷'으로 포로로 붙잡혀 가고, 마커스는 저항군의 여자 전투기 조종사 블레어를 만나 저항군 기지에 도착한다. 차근차근 영화를 보다 보면 마커스는 인간의 외형과 심장을 그대로 지닌 반(半)로봇임을 알 수 있다. 물론 나중에 극적으로 자신의 정체를 알고 갈등하는 모습이 묘사되지만 그에 앞서 이런 사실을 관객들은 눈치챌 수 있다. 저항군 기지에서 인간이 아닌 기계 취급을 받으며 스파이로 몰리는 마커스. 그는 자신의 말대로 인간일까, 아니면 기계 스파이일까?
◆매트릭스 + 트랜스포머 + 터미네이터 전작
제임스 카메론이 감독한 '터미네이터 1, 2'(1984년, 1991년), 조너선 모스토가 감독한 '터미네이터 3'(2003년). 시리즈 1, 2편은 극찬을 받았지만 3편은 그저 그런 영화가 됐다. "다시 돌아오겠다(I'll Be Back)"라는 터미네이터의 명대사는 공허한 메아리로 남는 듯 했다. 하지만 '미녀 삼총사 2'를 감독했던 맥지(McG)의 손에서 영화는 다시 생명을 얻었다. 제임스 카메론도 고개를 갸웃거렸고, 주지사가 된 아놀드 슈워제네거도 없지만(물론 이번 영화에서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 잠시 등장한다) 돌아온 터미네이터는 적잖은 볼거리를 제공하며 만족스럽다는 평가를 받게 됐다. 영화의 큰 얼개는 기계와 인간의 대결을 다루지만, 반(半)로봇이 된 마커스를 통해 본 진짜 인간의 모습이 무엇이냐는 물음을 던진다. 그러고 보면 이번 영화는 많은 요소들이 뒤섞여 있다. 기계에 지배 당하는 인류의 미래를 그린 '매트릭스'가 저변에 녹아있고, 화려한 기계 군단의 액션에는 '트랜스포머'를 제작했던 컴퓨터 그래픽이 배어있으며, 존 코너와 터미네이터의 대결에는 마치 전작 시리즈(특히 1편)에서 본 듯한 장면이 많이 숨어있다. 아울러 인간은 무엇이고, 자각력을 지닌 기계는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은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1993년)를 떠올리게 한다. 블레이드 러너에는 외견상 진짜 인간과 구별이 불가능한 복제 인간 '리플리컨트'가 등장하고, 이번 영화에는 인간의 심장을 지닌 마커스가 나온다. 이번 시리즈 4편은 전작인 3편에 비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을지언정, 앞서 1, 2편과 같은 충격과 감동을 주기에는 다소 역부족으로 보인다. 잘 만든 영화이고 재미도 있지만 수작의 반열에 올리기에는 다소 떨어지는 감이다. 영화 속에서 존 코너는 스카이넷으로 침투하기에 앞서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I'll Be Back"을 날려준다. 영화 막바지에도 마치 속편의 등장을 예고하는 듯 '전투는 끝났지만 전쟁은 계속된다'는 자막이 뜬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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