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로 읽는 한권]안부를 묻사옵니다 요즘 어떠신지요

입력 2009-05-20 06:00:00

"안부를 묻사옵니다 요즘 어떠신지요/ 창문에 달빛 어리면 그리움 더욱 짙어집니다/ 꿈속에서도 님을 만나려 내 영혼이 서성인 발자국을 본다면/ 문 앞 돌길이 모두 모래가 되었을 것입니다."-그리운 님에게/ 이옥봉-

『김용택의 한시 산책』김용택 엮고 씀/ 화니북스 펴냄/ 127쪽/ 6천원.

"이 글들이 미술의 정체를 밝히고 있다고 말하지 않겠다. 오히려 변방에서 들리는 소식에 가깝지만 미술과 가깝게 지내려면 이 정도의 소식도 보탬이 될 날이 있을 것이다. 자 이제 미술을 데리고 한번 놀아볼 때다. 놀되 기왕이면 도타운 정분을 쌓고, 그 정분이 사랑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읽기 전에 읽어두기 중에서-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손철주 지음/ 생각의 나무 펴냄/ 355쪽/ 1만5천원.

사랑하는 님을 기다리며 오고 간 영혼의 발자국에 문 앞 돌길이 모두 모래가 되었을 것이라는 애절한 표현을 한 여인, 이옥봉을 만든 것은 사랑이다. 사랑에 눈이 멀지 않고서야 어찌 이런 표현을 할 수 있으랴 싶다. 20대의 사랑은 어두운 하늘을 찢고 내리치는 번개 같은 것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단 한번의 사랑이면 족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의 관계가 어찌 그런가. 죽을 것만 같았던 열정도 세월의 칼질 앞에는 버티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사랑도 인연이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가슴이 따뜻한 시들을 읽는다. 김용택 시인이 엮은 한시는 옛 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특히 황진이와 이옥봉의 시에는 플라스틱 사랑이 넘쳐나는 오늘, 낭독의 기쁨으로 가득하다.

영화를 고를 때 감독을 선택한다면 대체로 실패하지 않는다는 철칙은 책에도 적용된다. 손철주의 글들은 그래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미술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그의 글에는 그림에 대한 사랑이 짙게 묻어난다.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는 그래서 『그림 사랑하는 만큼 보인다』로 바꿔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사실 많은 사람들에게 그림은 클래식 음악만큼이나 어렵다. 더구나 비평가들의 해석은 오히려 복잡하기만 하다.

이런 의미에서 손철주의 그림에 대한 해석은 쉽고 재미있기까지 하다. 그의 말처럼 좁쌀 같은 이야기들, 즉 작가들의 덜 알려진 과거와 작품 속에 담긴 좀처럼 읽히지 않는 미스터리, 그리고 미술 시장에 대한 이야기는 정통(?) 미술계에서는 한담이 될지 모르지만 그림을 좀 더 가까이하는 데는 훌륭한 연장이 된다. 대중과 괴리된 문화의 끝은 분명하다. 그림이 그렇고 음악이 그렇다. 대중의 심금을 울리는 예술이란 과연 어떤 의미인가를 작가는 묻는다. 그 대답을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는 이 찬란한 봄을 즐길 자격이 있다. 옛 시인들의 연가(戀歌)나 그림에 대한 사랑이 세상을 구원하는 힘이 되지는 못할지라도 가슴을 데우는 순간은 될 수 있으리라. 그 순간이 영원이 되는 것임을….

전태흥 여행작가 ㈜미래티엔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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