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락의 시사코멘트] 박쥐, 노무현, 대구

입력 2009-05-09 06:00:00

시중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박쥐'라는 영화에서 여주인공의 불행은 '공고'를 나온 아버지가 그녀를 세 살 때 버리고 간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영화 내용도 '제정신을 가진 감독이 만들었나' 싶을 정도로 너무 잔혹하지만, 아이를 버린 아버지를 굳이 '공고' 출신이라고 이름 붙인 데서 묘한 느낌을 갖게 된다.

영화에서 공고 나온 아버지가 아이를 버렸다는 이 진술에는 우리 사회 주류의 학벌에 대한 편견이 녹아 있는 게 아닐까. 인도의 카스트제도가 무색할 우리의 학벌사회에 비추어 보면 공고나 상고와 같은 실업계 고교를 나온 경우 거의 잘못된 낙인이 찍힌 지 오래이다. 여기에 동의할 사람도 있고 반발할 사람도 있겠지만, 이런 현실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우리 어른들과 교육제도의 몫이다.

쉰 살까지 살아온 내 사회생활의 경험에 비추어 본다면 '돈은 악마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사실이다. 괴테의 파우스트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욕망 때문에 악마(메피스토)와 거래를 한다. 다시 말해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악마에게 영혼을 판 것이다.

현실에서 많은 사람들은 욕망 충족을 위해 돈에 자신의 영혼을 맡겨 버린다. 이것은 문인이나 학자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 않고 성직자라고 해서 특별히 예외가 있지 않다. 돈에 대해서 인간은 근본적으로 메피스토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래서 소설 '고리오 영감'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작가 발자크는 '큰 부자 뒤에 큰 도둑 있다'는 말을 남겼다.

근래 우리 일상의 화두는 '노무현'이다. 이 이름은 사실 대통령이 되던 그 순간부터 문제의 이름이었다. 반칙과 특권 없는 세상을 외치며 지나치게 도덕성과 청렴성을 강조할 때부터 사실 문제의 근원은 출발되었다. 도덕과 청렴이라는 가치는 강조한다고 해서 될 게 아니다. 사회 환경이 그렇게 가도록 해야 되고 국민들 마음속에 내면화되도록 해야 한다.

지금 당장 어두운 곳으로 가고 있을지라도 인간은 근본적으로 옳은 게 뭔지 알고 있다는 괴테의 말처럼, 굶주리지 않고 사는 데 조금 여유가 생기면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도덕적이 되고 청렴해진다. 참여정부의 국정기조는 분배였지만 사실 그렇게 가지 않았던 것에 대해 국민들이 다 알고 있다. 새삼스러운 얘기지만 노 대통령이 대선 공약이었던 아파트 원가 공개를 거부하면서, 남는 장사도 있어야 한다 운운할 때 이미 틀린 것이다.

그렇다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금처럼 이렇게 처참하게 여론의 매를 맞는 것에는 반대한다. 이 여론에는 영남 비주류로 상고를 졸업한 고졸 대통령에 대한 대한민국 주류의 차별이 자리하고 있다는 의심을 나는 갖고 있다. 오죽했으면 삼성과 LG 같은 거대재벌한테는 돈을 얻어 쓰지 못하고, 20여 년 후원자로 있던 지방의 2, 3류 기업으로부터 푼돈(?)을 얻어 썼겠는가?

그러니까 부패한 검은 돈도 고졸 비주류 정권을 차별한 것이다. 이 얼마나 섬뜩하고 냉정한 현실인가. 이런 사실을 두고 일부 언론은 아예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방 3류 기업에서 푼돈을 얻어 쓴 생계형 잡범' 정도로 조롱하고 있다.

물론 노무현을 변호하고 싶지는 않다. 본인은 몰랐다고 하지만 1억짜리 손목시계, 100만 달러 수수, 500만 달러 투자는 또 무슨 말인가. 대선 당시 개미들의 헌금과 희망돼지 저금통을 들고 왔던 많은 서민들의 순정에 대해 뭐라고 변명을 할 것인가? 그리고 실업계 고졸이지만 변호사도 될 수 있고,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노무현 학습효과를 보고 열심히 뛰고 있는 학생들에게는 또 뭐라고 말할 것인가?

그러나 정치는 냉정한 현실이다. 대통령에게 무한의 제왕적 권력을 부여해 놓고 그 자신뿐 아니라 친인척까지 수도자처럼 살라고 하는 현재의 제도를 손질하지 않으면, 이런 일은 언제라도 되풀이될 수 있다.

시민들도 모였다 하면 노무현 욕하기가 오락이 된 것 같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단초를 제공했기는 하나 전직 대통령이 조롱의 대상이 되는 상황은 더 이상 바람직하지 않다. 대구시민은 애초 노무현을 지지하지도 않았다. 이제 죽은 권력인 '노무현 조롱하기'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오히려 살아있는 권력에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엄중히 감시하고 신경 쓰는 게 어떨까?

시인'경북외국어대 교수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