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갤러리]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입력 2009-05-09 06:00:00

▨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작가: 얀 반 아이크(Jan van Eyck·1395∼1441)

제작연대: 1434년

재료: 패널 위에 유채

크기: 82x60cm

근대의 기점이라고 할 수 있는 르네상스가 요원의 불길처럼 이탈리아 전 지역으로 퍼져나갈 즈음 플랑드르지역, 즉 오늘날의 벨기에와 네덜란드에서도 모직공업으로 축적한 부를 바탕으로 한 문화가 형성되었다. 특히 미술이 이탈리아에 비견할 만한 발전을 이루게 되는데 이를 편의상 북유럽 르네상스라고 부른다.

르네상스의 일반적 특색으로 '인간과 자연의 재발견'이라는 것이 강조되는데, 이것은 바로 현실세계의 재인식이며 그 의의에 대한 자각이라고 할 수 있다. 이탈리아인은 그 자각을 고대를 모방하는 것에서 출발하였던데 비해 북유럽에서는 사람들이 생활체험으로 그 출발점을 삼았다.

즉 르네상스의 일반적 특성 중 고대풍의 이상적인 경향이 이탈리아에 의해 대표된다면 그리스 로마 문명의 전통에 소원했던 플랑드르 지역은 있는 그대로의 생활과 자연을 충실하게 묘사하는 자연주의적·사실주의의 특색을 띠게 된다.

이 작품은 당시 플랑드르 화파의 리더이자 유채기법을 체계화한 화가로 알려진 얀 반 아이크가 이탈리아 상인 지오반니 아르놀피니(Giovanni Arnolfini)와 은행가의 딸 지오반나 체나미(Giovanna Cenami)의 결혼식을 그린 집단 초상화이다. 동시에 일종의 증명서 역할을 하는 그림으로서 당시 플랑드르 화파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이 그림의 읽을거리는 무엇보다도 상징성이라고 할 수 있다. 침실을 배경으로 남녀 한 쌍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데, 진지하고 엄숙한 표정의 남자는 한 손으로는 여자의 손을 잡고 있고 다른 한 손은 맹세를 상징하듯 손을 세워 들었다. 모피로 장식한 화려한 의상은 당시 부유층만 먹을 수 있었던 오렌지와 함께 그의 부를 과시하고 있다.

반면 여자는 정열적인 붉은 침대를 배경으로 순결을 상징하는 하얀 두건과 풍요로운 생산을 의미하는 녹색의 드레스를 걸치고 부끄러운 듯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다. 이 외에도 순종과 겸손을 의미하는 여자 손의 위치, 충성과 정절을 상징하는 강아지, 결혼식을 상징하는 양초, 신성함과 순결을 나타내는 수정 묵주와 거울, 자식을 고대하는 여성의 수호성인인 마르가르타를 조각한 붉은색 의자의 목조 장식, 신성한 장소를 의미하는 벗어 놓은 신발 등을 통해 작가의 의도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게다가 벽에는 라틴어로 'Johannes de Eyck fuit hic 1434'(얀 반 아이크가 여기에 있었다.1434년)라고 씌어 있어, 작가가 결혼식의 증인 역할도 수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조형적으로는 화면 맨 앞에 있는 인물을 배치하고 그 뒤로 실내의 좌우벽이 잘려나간 구도의 과감한 원근법을 사용했다.

그리고 유채기법의 특성을 최대한 살려 세밀한 묘사를 했으나 전체 화면은 냉엄하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원근법과 정교한 사실성에도 불구하고 그의 표현세계는 깊은 종교성과 상징성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아직 중세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중세에서 근대로의 점진적 이행은 북유럽 르네상스의 일반적인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권기준(대구사이버대 미술치료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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