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정현주의 휴먼토크]희망의 증거자

입력 2009-04-30 06:00:00

온나라가 가뭄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터라 갑자기 내린 비가 반가워 화들짝 놀라며 진료실 창을 통해 감상에 젖어 있었다. '유비무환(비가 오는 날은 환자가 없다)'이란 의사들 사이의 조크가 있듯 비오는 날은 환자들의 발걸음도 뜸하다.

모처럼 망중한(忙中閑)에 '장애자의 날'을 기념해 모 단체에서 보내준 사진첩 한 권을 펼쳤다.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난 앨리슨 래퍼라는 사진 작가가 자신을 모델로 한 작품의 사진첩인데 몇 장 넘기면서 얼어붙은 듯 숨을 멈추다가 긴 한숨으로 감동을 대신했다. 감동을 넘어서 가슴이 저려오는 예리한 슬픔의 아름다움에 매료돼 한참이나 사진첩을 덮지 못했다.

해표상지증(phocomelia)라는 선천성 기형은 그 모습이 마치 바다표범처럼 상지가 없거나 짧은 장애로 탈리노마이드란 신경안정제를 복용한 임산부(그 당시는 이 약이 입덧 치료제로 처방되었다)에서 태어난 아기가 갖는 선천성 기형이다. 의과대학 시절 교과서에 실린 사진이 4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뇌리에 선명하게 각인돼 있을 정도로 독특한 외관을 가지고 있다.

정말 그 사진처럼 생긴 앨리슨 래퍼는 자신을 모델로 아들 팰리스와 찍은 여러 편의 영상과 조각품을 통해 무언의 항변을 하고 있었다.

인간의 육체는 정상성이나 황금비율을 가진 완벽함만이 진정한 아름다움이 아니며, 또한 그러하다면 우리는 무엇을 통해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하느냐는 대명제를 제시하고 있었다.

특히 영국 트라팔가 광장에 세워진 임신한 앨리슨을 모델로 한 조각은 살아있는 비너스, 현대의 비너스, 밀로의 비너스란 닉네임에 걸맞게 찬란한 아름다움을 발하며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내가 이제까지 생각했던 정형화된 아름다움이나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미의 기준이 어지럽게 찢겨가고 있었다. 교과서에서 기형으로 분류돼 저주나 멸시 혹은 동정의 대상으로 여겨지던 해표상지증의 기괴한 모습은 앨리슨을 통해 환상적인 비너스로 환생되고 있었다.

"장애가 있는 사람이 천박하지도, 못 생기지도 우스꽝스럽지도 않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깨닫기를 바란다"는 그녀의 말처럼 그녀의 장애나 기형은 우리에게 더 이상 추(醜)가 아니라 미(美)로서 다른 장애인뿐만 아니라 정상인에게 조차 희망을 전하며, 기적의 증거가 되고 있었다.

장애인의 날이 되면 장애자들을 향해 사회 곳곳에서 이제까지 미뤄두었던 관심이나 배려를 작정한 듯 쏟아내며 결의를 다짐하지만 곧 일회성에 그치고 놀라울 만큼 빠르게 전처럼 평온한 무관심으로 돌아간다.

장애인을 도와줄 대상으로 생각하는 관념부터 정리하고 우리와는 다르거나 모자라는 외형을 또 다른 하나의 모습이나 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무엇을 도와주어야 하느냐 보다는 우리와 다른 가능성이나 아름다움을 찾아 그 가치를 인정해보자. 그러면 내가 도와준다는 일방적인 부담이나 우월의식에서 벗어나 다름이나 차이를 극복한 서로 간의 소통으로 승화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을 했을 때 "발로 했냐?"라는 핀잔을 무색하게 하는 흑인 기타 리스트가 있다. 팔 없는 장애인인 '토니 멜렌데즈'는 팔이 없으니 발로 연주하고, 그림도 그리는 데 모든 것을 아름다운 것으로 변화시킨다. 그 역시 우리가 도울 대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희망을 연주하고, 희망을 그리는 희망의 증거자인 것이다.

053)253-0707, www.gounm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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