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5월 17일 아름다운 봄날에 아동문학가 권정생 선생이 세상을 떠났다. 벌써 두 해가 다 되어 간다. 그 무렵 선생이 평생을 산 안동시 일직면 조탑동 흙집을 찍은 사진 하나가 지금도 또렷하게 떠오른다. 주인을 잃은 채 섬돌 위에 놓인 검정 고무신과 그 누군가 가져다 놓은 백합 한 송이가 나란히 찍힌 사진이다.
선생은 평생 계절별 옷 한 벌과 고무신 하나로 살았다. 병마에 찌든 몸으로 동화를 쓰면서 '무소유'의 삶을 살았다. 가난한 삶이었지만 그렇다고 선생이 곤궁한 것은 아니었다. 수십 권의 책에서 나온 인세를 모아 선생이 남긴 유산이 10억여 원이나 됐다. 선생은 자신을 위해 돈을 쓰지 않고 남을 위해 다 썼다.
선생은 죽음을 앞두고 어린이들을 위해 자신의 재산을 써달라는 말을 남겼다. 그 유언에 따라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이 최근 북한 어린이들을 위해 사과나무 심기에 나서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주렁주렁 열린 사과는 북한 어린이들에게 제공된다. 선생은 가고 없지만 그 아름다운 뜻은 살아남아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다. 재단은 또 안동 지역 소외계층 어린이들을 위해 선생의 저서 40가지를 포함한 책 100가지 1천500권을 지원하기로 했다. 선생이 쓴 동화를 원작으로 한 어린이극 '강아지똥'은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 무대에 오른다고 한다.
'몽실언니'와 더불어 1967년에 쓴 동화 '강아지똥'은 선생의 대표작이다. 아무 쓸모없다고 슬퍼하던 강아지의 똥이 '하느님은 쓸데없는 물건은 하나도 만들지 않았다'는 흙의 말을 듣고 희망을 얻어 거름으로 부서져 고운 민들레꽃을 피운다는 가슴 따뜻한 이야기다. 해외에서는 '한국의 어린왕자'로 일컬어지는 작품이다.
그 강아지똥보다 못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세상이다. 하찮은 강아지똥은 자신의 몸을 희생해 거름이 되어 별빛과도 같은 아름다운 민들레꽃으로 다시 피어난다. 사람들은 자신만을 채우려 아등바등 세상을 살아간다. 권정생 선생의 삶은 많이 가져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베푸는 것이 행복에 이르는 길이란 진리를 남겼다. 강아지똥은 자기 희생과 희망의 참된 의미를 일깨워준다. 아름다운 이 봄날 선생의 삶과 강아지똥은 새삼스레 우리네 삶을 反芻(반추)하게 한다.
이대현 논설위원 s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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