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들'이 왜 불행해야 할까

입력 2009-04-15 06:00:00

변성/심종문 지음/정재서 옮김/황소자리 펴냄

중국 사천성과 호남성 접경인 다동성 인근 나루터. 50여년 나룻배를 끌어온 사공 노인과 손녀 취취가 살고 있다. 사공의 딸은 군인과 사랑해 손녀 취취를 낳았다. 결혼할 수 없었던 군인은 자살을 택했고 사공의 딸 역시 아기를 낳자마자 강물에 뛰어들어 군인의 뒤를 따랐다. 늙은 사공은 손녀 취취를 홀로 키웠다.

취취는 가무잡잡한 피부에 맑은 눈빛을 가진 처녀로 자랐다. 2년 전 단오날, 나루터에서 조금 떨어진 마을로 축제 구경을 나갔던 취취는 나송이라는 청년을 만났다. 별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날 이후 취취는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히곤 했다. 취취가 만났던 청년 나송은 크고 작은 배 4척을 가진 선주 순순의 둘째 아들로 좋은 사람이었다.

선주 순순은 부지런해서 큰 돈을 벌었고, 나루터에서 번 돈을 나루터를 위해 쓸 줄 알았다. 그는 이웃의 어려움을 도울 줄 알았고, 이웃의 기쁨을 함께 즐거워 할 줄 알았다. 그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큰아들 천보와 단오날 취취가 만났던 둘째 아들 나송. 두 아들 모두 건강하고 용감하며 좋은 청년이었다. 순순의 두 아들은 남몰래 뱃사공의 손녀 취취를 좋아했다.

선주는 자신의 큰아들과 취취를 혼인시키고 싶어했다. 그래서 사람을 보내 청혼했다. 그러나 취취는 선주의 둘째 아들을 좋아하고 있었다. 그녀는 대꾸하지 않았고 할아버지 역시 취취의 마음을 짐작했음으로 대꾸하지 않았다. 취취의 답을 얻지 못한 선주의 첫째 아들 천보는 낙심했고 긴 뱃길에 올랐다가 사고로 죽고 말았다. 선주 순순에게 아들 천보의 죽음은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됐다.

소설 '변성'의 미덕은 향토색 짙은 방언과 몽환적이고 아련한 분위기, 문명의 때가 묻지 않은 풍경과 그 속에 사는 '좋은 사람들'이다. 등장 인물들은 도리를 알고 인심을 알고, 타인의 고통을 안다. 양보와 염치를 아는 사람들이어서 욕심내지 않으며 나누어줄 줄 안다.

뱃사공인 취취의 할아버지는 몇 푼 안되지만 관의 녹을 먹는다는 말로 뱃삯을 받지 않는다. 배를 타고 강을 건넌 사람이 수고비로 끝내 몇 푼이라도 쥐어주면 멀리까지 쫓아가 돌려 주었다. 돌려 줄 수 없는 날엔 그 돈으로 담배를 사거나 차를 끓여 강을 건너는 나그네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주었다. 할아버지만 그런 것은 아니다. 선주 순순과 그의 두 아들을 비롯해 마을에 사는 사람들 누구나 아름답고 선한 사람들이다.

(그런 작품 경향 때문에 문화대혁명 시절 작가 심종문은 '입장이 없는 기녀 작가'라는 낙인이 찍혀 문단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어쨌든 소설 속 사람들은 아름답고 그들이 사는 고장 역시 아름답고 싱싱하다. 그럼에도 그들은 결정적인 순간 불행하다. 늙은 사공의 딸은 이룰 수 없었던 사랑 때문에 죽었고, 손녀 취취 역시 제 어머니와 같은 길을 걸을지 모른다.

인심 좋은 선주 순순의 첫째 아들은 취취의 사랑을 얻지 못하자 낙담해 떠돌던 중 사고로 죽었다. 아들을 잃은 부모의 불행이야 더 말할 것도 없다. 취취를 사랑했던 둘째 아들 나송 역시 객지를 떠돌고 있다.

폭우가 쏟아지던 날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취취 역시 홀로 남았다. 취취의 할아버지는 손녀가 제 엄마와 같은 길을 걷지 않도록, 좋은 사람을 만나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온갖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국 손녀가 짝을 만나는 것을 못보고 죽었다. 취취는 나송을 기다리며 할아버지를 대신해 배를 젓고 있다. 나송이 언제 돌아올지, 돌아오기는 할지 모른 채….

아름다운 땅에서 욕심 없이 사는 사람들은 어째서 불행해야 할까?

역설적이지만 이들의 불행은 염치와 도리에서 기인한다. 취취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사랑을 이룰 수 없다는 이유로 자살했다. 애매한 관계를 지속할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죽음을 택했다. 선주 순순의 첫째 아들 역시 사랑을 얻을 수 없자 낙담하고 죽었다. 그는 낫을 들고 사랑을 쟁취하는 대신 포기함으로써 저 혼자 불행을 감당했다.

뱃사공인 할아버지는 손녀 취취가 선주의 둘째 아들을 좋아하고 있음을 알았지만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둘째 도령에게 이런저런 말을 걸어 '관심'을 표현했다. '사실 내 손녀는 자네를 좋아하고 있다네' '자네가 내 손녀와 결혼해 이 나룻배를 이어받아야 하지 않겠나' 라고 말하는 것은 염치없다고 생각했다. 노인은 둘째 도령에게 나룻배를 대신 끌어달라고 말하는 대신 '둘째 도령, 길에서 많이 힘들었지…'라며 쓸데없는 말만 해댔다. 둘째 도령은 취취를 좋아했지만 그 할아버지란 작자가 말을 빙빙 돌리는 것을 '음흉하다'고 생각했다.

취취의 할아버지는 둘째 도령의 아버지 순순 선주에게도 속에 든 말을 꺼내지 못하고 빙빙 돌렸다. 그는 '당신과 사돈 맺고 싶다'고 말하는 대신 '산촌 사람들이 하는 말이 댁에서 산촌의 자위단장네와 사돈을 맺으려 한다는 데 그게 참말인가요?'라고 물었다. '참말인가요?'라는 물음에 선주는 자신의 큰아들과 작은 아들의 불행이 참견하기 좋아하는 이 노인네 때문이라고 오해했다. 할아버지는 끝내 손녀 취취가 결혼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

소설 '변성'은 1934년 봄에 씌어졌으나 주목받지 못했다. 제국주의 침탈이 극심하던 시절 자연의 아름다움과 자잘한 개인사를 이야기하는 작품은 가치가 없다는 평가를 받았던 것이다. 공산주의 체제 시절 작가 심종문은 사회 변혁과 사실주의 풍조에 어긋났다는 이유로 비판받았다. 그러나 1988년 심종문이 노벨문학상 최종 후보에 오르면서 '변성'은 널리 읽히기 시작했다. 홍콩의 저명한 시사 주간지 아주주간은 '20세기 중국소설 100강'에서 노신의 '납함'에 이어 2위로 심종문의 '변성'을 선정한 바 있다. 208쪽, 1만2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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