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불법사채 대책은 서민대출기관 설립으로

입력 2009-04-11 06:00:00

서민의 생활고를 틈탄 악덕 고리 私債(사채)업자의 불법 영업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사채를 빌린 뒤 늘어나는 이자를 감당 못해 유흥업소 접대부로 일해야 했던 여대생 딸과 이를 비관한 아버지가 딸을 목 졸라 숨지게 하고 자신도 저수지에 투신자살한 사건까지 생겼다. 부녀를 죽음으로 내몬 사채업자는 돈을 빌린 여대생에게 법정 이자율(연 49%)의 무려 7배에서 14배인 345∼680%의 이자를 뜯어갔다. 인간 흡혈귀가 따로 없다.

이 사건은 금융 약자를 위한 체계적인 금융 지원 대책 마련의 시급성을 잘 말해준다. 악덕 고리 사채업자가 기승을 부리는 이유는 서민 등 금융 약자들이 제도권 금융기관의 문턱을 넘을 수 없어서다. 서민들이 인간 흡혈귀에 피를 빨리는 일임을 알면서도 불법 사채업자의 함정에 자진해서 빠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세계적인 경제침체의 여파로 제도권 금융기관으로부터 문전박대를 당하는 7~10등급의 저신용자는 올 1월 말 현재 814만 명으로 1년 사이에 51만 명이 늘었다. 금융 약자들이 악덕 사채업자가 쳐놓은 올가미에 걸릴 가능성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얘기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에 신고된 사채로 인한 피해건수는 지난 한 해 동안 4천75건으로 2007년보다 20% 가까이 늘어났다.

대검찰청이 지난해 12월 불법적인 사금융을 서민경제에 주름을 주는 악덕사범으로 정해 엄단한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고리 사채로 인한 피해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단속이나 처벌만으로는 불법 사채가 근절되지 않음을 말해준다. 따라서 금융 약자들을 위한 제도가 마련되지 않고서는 비슷한 사건은 계속 생길 수밖에 없다. 정부의 압박으로 금융기관이 저신용자에 대한 소액대출에 나서고 있다지만 일선 은행창구에서는 대출을 거절당하는 서민들이 대부분이다.

결국 불법 사채업자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저신용자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별도의 대출기관을 마련하는 것이다. 현재도 방글라데시의 빈민 신용대출기관인 그라민은행을 본뜬 마이크로크레디트(소액 신용대출) 기관이 있지만 지원 규모가 적어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국내 마이크로크레디트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사회연대은행의 경우 운영자금이 200억 원에 불과하고 지원실적도 지난 6년 동안 94억 원에 그치고 있다. 따라서 금융기관에 금융 약자를 지원하라고만 할 게 아니라 정책자금으로 서민 대출을 해주는 공공 금융기관을 설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방안은 여러 차례 그 필요성이 제기된 만큼 이제 정부가 의지를 갖고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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