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긋불긋 꽃대궐' 활짝 핀 웃음꽃 …봄, 꽃의 세계

입력 2009-04-11 06:00:00

엄마 손을 잡은 꼬맹이가 쉴 새 없이 눈을 돌렸다. 해맑은 웃음, 신기한 표정이다. 따스한 봄 햇살을 받은 아이의 볼은 빛났다. 꽃봉오리가 바람에 부서졌다. 꽃잎이 흩날렸다. 꼬맹이는 떨어지는 꽃잎과 장난을 쳤다. 꽃잎은 날았고, 꼬맹이는 뛰었다. 결코 꽃잎을 잡을 수 없었지만, 신났다. 엄마는 웃었다. 왕벚꽃도 하얗게 웃었다.

대구시 달성군 옥포면 기세리, 용연사 가는 길의 기세못 못 미친 도로변. 왕벚꽃이 흐드러졌다. 1km가 넘는 벚꽃 터널이다. 꽃이 사람과 어우러져 활짝 웃는다. 달리던 차도 이 곳에선 걸음을 멈춘다. 어떤 꽃잎은 추락하면서 짧은 생을 마감하고 있었다. 내년을 다시 기약하면서…. 다음 주말쯤엔 벚꽃의 주연은 마감될 터다. 절정은 지난 주였다. 금, 토요일엔 꽃구경 나온 시민들로 승용차들이 거북 걸음을 했다. 꽃 속의 사람인지, 사람 속의 꽃인지 헷갈렸다. 꽃과 사람이 몰리면서 먹을거리 장터도 생겨났다. 10곳이 넘는 임시 먹을거리 장터 상인들도 함께 웃었다. 한 상인은 "벚꽃이 주는 수입이 짭짤하다. 꽃잎이 다 떨어지면, 우리도 짐을 싼다"고 했다. 벌써 열흘째다. 해마다 벚꽃은 사람을 반기고, 덩달아 장터도 북적인다. 사람과 꽃과 장터가 공생하고 있었다.

지난 8일 오후 대구시 달서구 대곡동 대구수목원. 온갖 꽃과 나무가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봄나들이 온 이들로 붐볐다. 꽃과 상대의 눈을 번갈아 보며 손을 맞잡은 연인들. 꽃 속의 데이트는 꽃처럼 화사했고, 정겨웠다. 나들이는 꽃을 보기 위해서인지, 연인의 눈망울을 보기 위해서인지 모를 일이었다. 아이들은 신났다. 꽃도 나무도, 벤치도 모두 놀이터였다. 한 꼬맹이가 꽃길 옆 작은 개울에 폭 빠졌다 나온 뒤 울먹였다. 그러나 이내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언제 그랬느냐는 듯 미소를 보였다. 다른 친구들을 보자 엄마 손을 뿌리치고 냅다 달렸다. 쓰러졌다. 다시 뛰었다. 마냥 즐거웠다.

"어, 하얀 진달래도 있네?" 한 여자 아이가 말하자, 아버지는 "그런 게 어디 있어. 어, 정말로 흰 진달래가 있네"라고 했다. 예닐곱 정도의 아이에게 '이 꽃은 어떤 꽃, 저 꽃은 자생지가 어디이고, 저 꽃은 어느 나라에서 들어왔고…'하며 열심히 설명하는 부모도 눈에 띄었다. 자연생태 학습장이기도 했다.

숲 해설가 한의웅(69·대구생명의 숲)씨는 "꽃 이름이나 유래를 설명하다 보면, 의외로 가까이 두고도 모르는 이들이 많다"며 "또 알고 있는 꽃도 그 꽃의 다른 이름을 모르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씨는 또 "5월에 하얀 꽃이 활짝 피는 가침박달은 앞산 군락지가 유명하다"고 했다.

유성태 대구수목원 임업연구사는 "팔공산은 식물생태계의 보고라고 할 정도 다양한 꽃들이 있고, 달성습지와 안심습지 등도 잘 보존해야 할 지역 생태계의 자산"이라고 말했다.

두 손을 맞잡은 연인들도, 유모차를 끌고 나온 부모들도, 개구쟁이 꼬맹이들도 수목원의 꽃 세계에 흠뻑 빠져 있었다.

바야흐로 봄이다. 꽃은 봄을 알리고, 봄은 꽃을 맞는다. 빠른 봄이 빠른 봄꽃을 피운다. 우리나라는 점차 아열대 기후로 변하면서 꽃피는 시기도 이젠 일정하지 않다.

'건강과 복을 기원한다'는 복수초. 샛노란 꽃잎은 봄을 가장 먼저 알린다. 2월 늦겨울이나 이른 봄에 논에서, 심지어 눈이나 얼음을 뚫고 피어나기도 한다.

여기서 퀴즈 하나. 우리나라 꽃은 무궁화, 그렇다면 일본의 국화(國花)는? 벚꽃, 아니면 국화(菊花)? 아니다. 일본엔 '나라 꽃'이란 개념 자체가 없다. 우리에게 소나무가 친숙한 것처럼, 일본인들이 벚꽃을 친숙하게 여길 뿐이다. 봄에 잎보다 먼저 꽃이 피는 왕벚나무. 국내에서는 제주도 한라산과 전남 해남의 두륜산이 원산지다. 꽃과 잎이 동시에 피는 것은 산벚나무다.

팔공산, 앞산, 두류공원, 수성못 주변을 비롯해 대구시내 곳곳에서 벚꽃은 이제 절정을 넘어 막바지 몸부림을 치고 있다. 신천과 금호강변의 개나리, 두류공원과 수성못의 백목련과 자주목련도 한껏 뽐내고 있다. 팔공산 신숭겸장군 유적지 인근에는 자줏빛을 내는 자엽자두 꽃이 가로를 장식하고 있다. 어떤 꽃은 지고, 또 다른 꽃은 이제 막 봉오리를 터뜨리기 시작했다. 봄꽃의 세계로 들어가 본다.

◆봄의 전령

복수초를 선두로 '살구꽃' '개나리' '민들레' '매화' '산수유 꽃' 등이 봄의 전령사다.

'노루귀'도 봄소식을 서둘러 전한다. 노루귀는 잎이 깔대기 모양으로 말려서 나오며, 긴 털이 돋아난 모양이 노루의 귀와 닮았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분홍과 흰 꽃이 있다. 남쪽 섬 지방에 많이 자라는 '새끼노루귀', 울릉도 숲 속에서 자라는 '섬노루귀(왕노루귀) 등이 있다. 섬노루귀는 꽃이 크고 예쁘며, 겨울에도 잎이 지지 않아 원예적 가치가 높다.

◆꿀과 독을 품은 꽃

벚꽃과 귀룽나무, 이나무 꽃은 모두 잎자루에 꿀샘을 갖고 있다. 꿀샘은 개미를 유인하는 역할을 한다. 개미들이 진딧물 등의 접근을 막아내는 것. 자기 보호용인 셈이다. 벚꽃나무는 제주도 산지의 '제주산벚', '거문도벚', 북부 산지와 해변의 '왕산벚', 울릉도 '섬벚' 등 다양하다.

'조팝나무'는 조밥에서 나왔다. 꽃잎이 마치 좁쌀을 튀겨놓은 것처럼 보인다고 조밥으로 했다 발음이 강해져 조팝으로 정착됐다. 꿀을 품은 이 꽃에 벌과 나비가 많이 모여들어 양봉 농가가 좋아하는 꽃이다.

'박태기나무'의 꽃에는 독성이 있다. 꽃봉오리가 밥알 같다고 '밥풀떼기'란 이름에서 나와 박태기가 됐다. 철쭉도 독성이 있어 먹지 못하고, '동의나물'도 나물이란 이름이 붙었지만 독초로 알려져 있다.

◆이름도 많아요

붉은 꽃이 잎보다 먼저 피는 진달래는 먹을 수 있어 '참꽃', 진달래과(科)에 속하는 철쭉은 먹을 수 없다고 '개꽃'이라고도 한다. 진달래의 한 변종으로 높은 산지에 자라고 잎에 털이 많은 '털진달래'도 있다. 진달래 꽃잎으로 부친 화전도 맛있지만, 꽃과 뿌리를 섞어 빚은 두견주가 일품이다. 진달래가 지고 난 뒤 곧바로 피는 철쭉은 통상 꽃과 잎이 함께 피는데, '산철쭉(수달래)'은 잎보다 꽃이 늦게 핀다.

꽃이 핀 모양이 수수처럼 보인다는 '수수꽃다리'. 귀화식물인 수수꽃다리는 영어권에서는 '라일락', 프랑스에서는 '리라'라고 부른다. 미국에는 '미스김 라일락'도 있다. 미군정 당시 한국에서 가져간 수수꽃다리를 개량해 작은 나무에서도 꽃을 피울 수 있도록 한 품종이다. 수수꽃다리를 가져간 장교가 미군정 당시 자신의 사무실에 함께 근무한'미스 김'을 인용해 붙인 이름이다.

◆의미를 담은 꽃

매화는 혹한에도 죽지 않고 이른 봄에 꽃을 피워 선비의 기상을 나타내는 꽃이다. 매화의 '梅'는 나무 옆 '사람 인'과 '어미 모'를 쓰고, 임신을 하면 매실 같은 신맛을 찾는다고 '어머니가 되는 것을 알려주는 나무'로도 알려졌다.

홑꽃은 '홍매', 겹꽃은 '분홍매', 흰색을 띄는 것은 '옥매', 연분홍 빛깔의 홑꽃은 '산옥매'로 각각 불린다.

대구시화인 목련은 봄을 맞이한다고 '영춘화'로 불리기도 한다. 4월을 전후해 잎보다 꽃이 먼저 핀다. 꽃잎 안쪽이 희고 바깥이 자주빛인 '자주목련', 안팎이 모두 자줏빛인 '자목련', 꽃 모양이 별빛처럼 퍼진 '별목련', 중국에서 들어온 '백목련' 등이 있다.

◆모양으로 말하는 꽃

모양을 띈 꽃 이름이 많다.

꽃이삭(꽃대)이 한 개씩 촛대같이 올라와 꽃을 피운다고 붙여진'홀아비꽃대'. '숨겨진 아름다움'이란 꽃말을 갖고 있다.

꽃이 활짝 폈을 때 여섯폭 치마의 모양을 가진 '처녀치마'가 있다. 잎을 오므리면 물동이처럼 생겼다고 '동의나물', 역시 잎을 오므리면 물 종지처럼 보인다는 '종지나물'도 있다.

'금낭화'는 옛 여인들이 치마 속에 매달고 다닌 주머니 모양과 닮았다고 '며느리주머니'라고도 한다. 물가에 자라는 '수선화'는 꽃잎 모양이 대에 잔을 올려놓은 듯하다고 해 '금잔은대'로도 불린다.

◆자생 꽃

남부지방에 주로 분포하는 '히어리'는 우리나라 특산의 떨기나무다. 송광사 계곡에서 처음 발견되었다고 '송광납판화'라고도 한다. 이른 봄, 노란 꽃이 잎보다 먼저 핀다.

희고 청초한 배꽃의 개화는 5월이 적기다. 국내 자생인 '돌배나무'는 각종 배나무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꿀맛 나는 '참배나무'는 농가에서 인기다.

개나리는 노란 수술이 잎 밖으로 나온 수꽃, 암술이 길쭉하게 나온 암꽃으로 구분된다.'연교'라는 열매를 맺는 '의성 개나리'도 있다.

김병구기자 kbg@msnet.co.kr

사진 이채근·정운철기자

의성 '산수유 꽃 축제': 3월 말~4월 초

달성 '비슬산 참꽃축제': 4월 중순

영덕 '복사꽃 축제': 4월 중순

청송 '고산농장 배꽃 축제': 4월 말

청송 '주왕산 수달래제': 4월 말

영주 '소백산 철쭉제': 5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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