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은 서구, 안방은 달서구?…20년 지나도 안고쳐

입력 2009-04-10 09:28:52

한명희(57·여·달서구 감삼동)씨는 밥은 대구 서구에서 먹고, 잠은 달서구에서 잔다. 한씨의 집 안방과 건넌방은 달서구 감삼동에, 부엌은 서구 중리동에 속해 있는 탓이다. 재산세와 종합토지세 고지서도 달서구와 서구 양쪽에서 날아오고, 지적도 등 민원서류를 발급받을 때도 달서구청과 서구청을 모두 방문해야 한다. 한씨는 "은행 대출이라도 받으려면 양 구청을 찾아다니느라 진이 빠진다"며 "세금납부도 헷갈리는 경우가 잦아 항상 영수증을 꼬박꼬박 챙겨야 한다"고 불평했다.

지난 1988년 서구와 달서구 분구(分區)로 초래된 행정구역 경계 오류가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고쳐지지 않아 애꿎은 주민들만 고통을 겪고 있다. 인구 수와 법정동을 기준으로 구역을 나눈 탓에 한 집이 두 구로 양분되거나 같은 아파트 단지가 갈라지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그러나 두 구청은 주민 반대와 조정안 차이 등을 이유로 해묵은 공방만 거듭하는 실정이다. 구획조정 대상은 주택 30채와 아파트 1개 단지다.

12개 동, 400가구가 사는 I아파트 단지는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10개 동(棟)은 서구에, 2개 동은 달서구에 속해 있다. 같은 아파트 단지이나 수도료와 도시가스, 쓰레기 수거, 정화조 청소에 이르기까지 모두 따로따로 이뤄진다. 달서구 쪽 단지에 사는 이경자(57·여)씨는 "이쪽은 정화조 용량이 주민 수에 비해 커 가구수가 적은데도 청소 비용이 두 배 가까이 든다"며 "보건소 이용때 가까운 서구보건소를 놔두고 차를 타고 달서구보건소까지 가야하는 것도 불편"이라고 불평했다.

두 구청은 '네 탓 공방'만 거듭하고 있다. 서구청은 서구 편입을 반대하는 주민 정서가 강하기 때문에 달서구청이 주민 설득에 적극 나서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서구청 관계자는 "달서구가 생활권과 대(大)도로 중심으로 구간 경계 조정을 해야한다는 점을 주민들에게 납득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달서구청은 "달서구가 경계 조정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면서 "주민 반대 정서가 워낙 높고 의회와 논의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섣불리 나서기 힘들다"고 반박했다.

두 구청의 갑론을박에 대해 주민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 주민은 "주민 불편에 아랑곳없이 구청과 구의회가 구세 확장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며 "지금이라도 양 쪽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했다.

두 구의 행정구역 논란은 해묵은 과제다. 지난 1995년 대구시는 불합리하게 그어졌던 구간 경계를 일부 조정했지만 현재 경계 지역은 두 구청과 구의회의 주장이 엇갈리면서 조정되지 않고 있다. 시는 2003년 1월 달서구 죽전동과 용산1동을 서구에 편입하는 안을 마련했지만 서구로 편입되는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행정구역 경계 조정은 서구와 달서구 의회가 합의한 조정안을 대구시를 거쳐 행정안전부에 건의한 뒤 최종 결정된다. 이에 앞서 경계 구역 내에 거주하는 주민 의견을 묻는 주민투표가 이뤄져야 한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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