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소설가 헥터 휴 먼로(필명 샤키)의 掌篇(장편) 토버모리(Tobermory)는 은밀한 사생활이 공개될 때 빚어지는 결말을 잘 보여준다.
어느 마을,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파티에 별 볼일 없는 한 사람이 초대된다. 이유는 단 하나, 토버모리라는 고양이에게 말을 가르쳤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호기심으로 토버모리에게 말을 건넸다가 자신들의 은밀한 사생활이 드러나자 기겁을 한다. 누가 누구의 험담을 했다거나, 다른 사람과의 부적절한 관계 등 드러나서는 안 되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들의 실제 불안은 다른 곳에 있었다. 이들에게 말하는 고양이는 잠재적인 '시한폭탄'이었다. 언제 또다시 토버모리가 자신의 사생활을 엿볼지도 모르고, 무엇보다 이러한 醜聞(추문)을 퍼뜨리고 다닐 가능성도 컸다.
그들은 以心傳心(이심전심)으로 토버모리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방법을 찾느라 고민하던 차에 토버모리가 다른 수고양이와 싸우다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사람들은 그 죽음에 안도하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우리 사회에 이런 '토버모리들'이 판을 치고 있다. 이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인터넷이라는 입을 통해 남의 사생활을 떠벌리고 다닌다.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않고, 그저 재미로, 혹은 심심해서 정도의 이유뿐인 것 같다. 소설 속의 토버모리는 사생활을 폭로한 대가로 비참한 죽음을 맞지만, 인터넷의 토버모리들은 죽기는커녕 더 기세가 등등하다.
경찰이 수사 중인 한 탤런트의 리스트도 한 마리의 토버모리에서 시작된 듯싶다. 이어 수백, 수천 마리의 토버모리가 이리저리 퍼 날랐다. 그리고 그들에 의해 나머지 네티즌은 피핑 톰(Peeping Tom, 엿보는 사람)이 된 셈이다. 결국 이 리스트는 한 탤런트의 억울한 죽음이나 경찰의 수사와는 별개로 재미있는 가십거리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실 인터넷에서 토버모리를 없애기란 불가능하다. 그들은 多數(다수)와 匿名(익명)을 방패로 적당한 먹잇감이 나타날 때까지 沈潛(침잠)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 스스로 한 마리의 말하는 고양이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방법밖에 없을 것 같다.
정지화 논설위원 akfmcp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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