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움 속의 작은 진실…유명인들의 '별명'

입력 2009-03-28 06:00:00

워낙 자주 등판 '정 노예'…WBC 후엔 '국민 노예'

김휘동 안동시장의 별명은 '안동포'다. 안동 삼베가 아니라 안동 '대포'('허풍이 세다'는 뜻)의 안동포다. 김 시장은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이 왔을 때, 안동 간고등어를 내놓고 "안동호에서 키운 고등어"라고 했다. 또 어떤 이에게는 "안동호에는 고기를 낚기가 힘들다. 통상 '물 반, 고기 반'이라고 하는데, 안동호에는 물보다 고기가 더 많아 낚싯대를 드리워도 추와 바늘이 물고기 등에 받쳐 물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바람에 고기를 잡기 어렵다"고 했다. 경북지역 제사상에 문어를 많이 쓰는데, 김 시장은 지인에게 "지역 제사상 문어는 안동호 문어가 대다수"라고 하기도 했다. 대단한 허풍이다. 고등어와 문어가 언제 바다에서 호수로 올라왔는지 모를 일이다. 김 시장의 안동사랑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별명. 그 사람의 향기가 묻어난다. 사람의 성격이나 외모를 표상한다. 행동이나 태도의 일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분위기나 단면을 나타내지만, 인물 됨됨이까지 드러내는 경우도 있다. 별명은 당사자에게 달갑지 않은 경우가 많지만, 그 사람의 성격이나 태도 등을 한마디로 나타내는 압축된 '상징'이다.

스타일을 나타내는 별명 중 '버럭 범일'과 'DRD'('들이대다-드리대다'의 약어)가 있다. 김범일 대구시장은 간부회의 때 자주 '버럭'한다. 주로 시정과 관련해 답답할 때 화를 낸다. 열정이 많다는 얘기다. 김 시장은 학창시절엔 머리가 커서 '짱구'였고, 젊을 땐 '일벌레'였다. 김관용 경북도지사는 추진력이 왕성하고 저돌적이어서 '잘 들이댄다.' 구미시장 시절 '탱크'였는데, 지금 별명도 맥락을 같이한다.

지역출신 김영진 국토해양부 감사관은 '진돗개'다. 워낙 철저하게 파헤쳐 한 번 잡은 고기는 절대 놓치는 법이 없단다. 이재만 대구 동구청장은 배고픈 시절 빵을 좋아해 '빵돌이', 지금은 '황소'다. 우직하고 뒷심있게 밀어붙여 추진력이 뛰어나다는 말이다. '황소'란 별명은 비슷한 스타일의 이병철 경북교통단체협의회 회장도 갖고 있다.

스포츠 스타들은 별명이 다양하다. 아시아 홈런왕, 이승엽의 대표적 별명은 '병역 브로커'. 언뜻 불명예스런 별명 같지만, 아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부터 2006년 WBC, 작년 베이징올림픽까지 후배들 병역면제에 일등공신이기 때문이다. '일본 킬러' '이 작가'(극적인 드라마를 연출하므로) '승짱' '국민타자' 등등. 삼성 4번 타자 박석민도 꽤 많다. '볼매'(볼수록 매력적인) '매덩'(매력덩어리). 그 중에도 '브콜돼'(브로콜리 돼지)가 압권이다. 파마머리와 통통한 생김새가 영락없이 브로콜리와 돼지의 합작품이다. 박석민의 애인도 이런 애칭을 쓰는지 모르겠다. 삼성 정현욱의 별명은 가슴 아프다. 워낙 자주 등판해 '정 노예'다. 정현욱은 올해 WBC에서 맹활약, '국민 노예'로 별명이 업그레이드됐다. '태양의 아들' 이근호는 대구FC 시절 태양을 상징한 'FC 로고'를 땄다.

기업인들은 별명을 꺼린다. 있다면 부담스런 별명은 잘 없고, 주로 긍정적이다. 이승한 삼성테스코 홈플러스 회장은 'Never Give-Up'. 결코 포기하는 법 없이 전진하는 스타일이다. 이화언 전 대구은행장은 '잡학박사'란 너무나 '범생 같은' 별명이 있다. 이인중 대구상의 회장과 권성기 태왕 회장은 별명이 없는 것 같다. 직원들이 감히 별명을 부르지 못할 만큼 두려움을 갖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문희갑 전 대구시장의 '문핏대'와 삼성투수 오승환의 '돌부처' '포커페이스'는 널리 알려진 별명이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수첩공주', 홍준표 국회의원의 '빨간 넥타이'도 제법 회자된다. 박 전 대표의 별명은 '꼼꼼하고 철저하고 치밀하다'는 긍정과 '받아 적지 않으면 잘 모른다'는 부정의 의미를 동시에 가진다.

재미있는 별명도 있다. 이 중엔 정작 본인이 모르는 경우도 있다. '개구리'(엄지호 경상북도사회복지협의회 사무처장) '떠벌이'(정윤열 울릉군수) '싸이코'(조광현 대구경실련 사무처장) '꺼벙이'(김경민 대구YMCA 사무총장 직무대행) '발바리'(박하 수필가).

엄 처장의 별명엔 사연이 있다. 친구들이 외모를 두고 '개구리'라 불렀는데, 군대에서 굳어졌다. 당시 군 시절엔 '이'가 많았는데, 엄 처장은 독한 농약을 풀어 속옷과 전투복을 빨아 그 옷엔 이가 얼씬도 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동료들이 엄 처장의 '이 없는' 옷을 자주 훔쳐갔다. 급기야 그는 자신의 복장에 모두 검은 매직펜으로 '개구리'라고 써놓았고, 더 이상 옷을 뺏기지 않았다. 그 별명은 지금까지 이어진다.

정 울릉군수는 상대방이 10분 얘기하면, 본인은 50분 얘기해야 직성이 풀린다. 말수 만큼이나 고집이 세고, 일 욕심도 많다. 언뜻 부담스런 별명이지만, 저돌적이고 적극적이란 면에서 긍정의 뜻으로 풀이된다.

조 사무처장은 인터넷 별명이라고 할 수 있는 전자우편 ID를 '싸이코'라고 붙였다. 자신의 독특한 캐릭터를 스스로 홍보하고 있는 셈이다. 김 사무총장도 비슷하다. 눈이 작고 항상 웃는 낯이 다른 사람들에게 꺼벙하게 보인다는 것. 자신도 '꺼벙이'란 별명에 대해 싫지 않은 눈치다. 그러나, 결코 꺼벙하지 않고 모든 일을 느리면서도 지긋하게 풀어나간다. 지역출신 수필가 박씨의 '발바리'는 어린시절 심부름 다니기를 워낙 좋아했고, 자주 했기 때문에 생긴 것.

별명은 대체로 가볍지만, 그 사람을 알 수 있는 '작은 진실'이기도 하다.

김병구기자 k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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