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어렵다'라는 녀석이 살았다. 하도 귀가 얇아서 누군가 '어렵다'고 푸념만 해도 행여 자기를 불러주는 줄 알고 졸졸 따라다닌다나. '어렵다'는 요즘 인기 만발이고, 동기동창인 '살 만하다'는 녀석은 다소 인기가 떨어졌다. 그러다보니 불러주기만 하면 찰싹 달라붙어 떨어질 줄 모른단다. 갤러리에도 봄이 왔다. 꽃이 만발하고 행복이 넘쳐난다. '살 만하다'를 만나러 가보자.
◆꽃 향기가 나는 봄의 들판으로='봄·꽃·향기'전
꽃과 여인의 계절, 봄을 맞아 여류작가 12명의 작품이 한 자리에 모였다. 소재는 꽃이지만 다양한 표현기법으로 작가의 개성을 흠뻑 담은 작품들이 선보인다. 꽃마다 향기가 다르듯 붓을 통해 캔버스에 피어난 꽃들도 저마다의 향기를 담고 있다. 유채색에 대한 남다른 색감을 갖고 있는 강주영은 정물화의 정석을 따르면서 마치 꽃병과 테이블, 나비마저도 제각각 색깔을 뽐내기라도 하듯 화려한 색채적 쾌감을 전한다. 류제비는 사실적이고 평면적인 정물을 추구한다. 미려한 붓터치로 군더더기를 없앤 깔끔한 색감의 대비를 보여준다. 박미력은 꽃을 통해 삶의 덧없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꽃에서 향기가 아닌 체취가 묻어난다. 25~4월 6일/동아미술관/053)251-3502.
◆무한한 행복을 느끼고 싶다면='해피니스 언리미티드'
'어떻게 이런 작품을 만들 생각까지 했을까? 하하하.' 유쾌·상큼·발랄한 전시회다. 각양각색이라는 말이 이토록 어울리는 전시회도 찾아보기 힘들 듯. 달콤한 것을 먹으면 행복감을 느낀다지. 곽윤정의 그림이 딸기맛 사탕을 입에 문 듯한 느낌을 전한다. 조각가 고근호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같은 세상을 꿈꾼다. 쇠붙이에 색을 입혀 만든 찰리 채플린, 어린 왕자, 마이클 잭슨은 마치 장난감처럼 여겨지고, 그래서 하나쯤 갖고 싶어진다. 배 고플 때는 김진욱의 '비빔밥'을 보면 안된다. 고추장으로 분장한 갖가지 나물들이 어서 비벼달라고 아우성을 칠테니 견디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박은선의 '기도하는 백김치'를 보며 '푸훗'하는 웃음을 뱉어내다가 이내 기도 내용이 궁금해졌다. 여자는 여자가 가장 잘 안다고 했던가. 김혜연의 작품은 여성심리 개론서다. 25~4월 23일/갤러리소헌/053)426-0621.
◆풍경부터 인물, 추상까지='아트 투어, 8인의 개인전
1, 2부로 나눠서 작가 16명의 작품 80여점을 한 곳에서 선보인다. '아트 투어', 즉 예술 여행이라는 말을 붙일 법 하다. 백정숙은 이번 전시를 통해 초기 작품 '달'(moon·1978년 작)부터 최근작 '길'까지 수십년 간의 작품을 간추려 내놓았다. 안경애는 눈 내린 시골길 풍경을 보여준다. 아직 발자국 하나 남지 않는 하얀 들판을 보면 문득 뽀드득 소리를 내며 걷고 싶어진다. 거칠고 두터운 소나무 기둥과 그 사이에 가녀리게 피어난 솔잎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홍원식과 물고기를 통해 자연으로 돌아가고픈 현대인을 담은 정관호도 있다. 이들 중진 작가와 함께 양다정, 김현일, 전선렬 등 막 작업을 시작한 새내기 작가들의 작품도 선보인다. 24~4월 7일/봉성갤러리/053)422-5678.
◆소통과 관조의 세계를 보려면='김성년/이창규 개인전
경북대 시각정보디자인학과 교수인 김성년은 '디자인 짓'(Designing)이라는 부제로 개인전을 마련했다. 그는 "디자인은 사람과 사람, 그리고 관계와 소통을 야기하는 커뮤니케이션의 도구"라고 말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사람과 디자인의 소통을 위해 연구한다. 꽃, 나무, 바람 등 일상적 소재를 독특한 디자인의 영역으로 풀어낸 작품들은 상업적 코드가 가득한 디자인이 아니라 여유로움을 주는 디자인을 말한다. 대구출신으로 유럽, 미국 등지의 아트페어에서 각광받는 서양화가 이창규는 대나무 숲의 소리를 화폭에 담았다. 캔버스를 바라보노라면 가는 바람에도 소소히 떠는 대나무 잎사귀의 소근거림이 들려오는 듯 하다.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대숲속을 찬찬히 거닐어보고픈 충동을 느끼게 한다. 그렇게 대숲의 바람과 이야기하고플 만큼 사람은 외로운가 보다. 25~30일/대백프라자갤러리/053)420-8013.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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