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전 대구 달서구 이곡동 한국갱생보호공단 대구지부 2층 식당. 고소한 호떡 냄새가 가득했다. 식당은 금세 코를 벌름거리며 찾아온 갱생보호 원생들로 가득 찼다. 30여명의 갱생보호 원생들은 테이블에 둘러앉아 마른침을 삼키며 호떡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주방에서는 60대 할머니가 이들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손놀림이 바쁘다. 곧이어 노릇노릇 구워진 호떡이 종이컵에 담겨 원생들에게 나눠졌다.
지난해 10월 교도소에서 출소해 이곳에서 새 삶을 준비하는 김모(41)씨는 "어머니 같은 분이 직접 만들어주신 호떡을 먹으며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됐다"며 "호떡에서 전해지는 온기를 앞으로 가슴속에 품고 살겠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이들에게 호떡에 사랑을 담아 전하는 이는 이신자(68)씨. 할머니는 경북 청도의 한 초교 앞에서 호떡 장사를 하다 만난 단골 손님에게서 이곳 얘기를 들었다. "얼마나 정이 그립겠누. 값싼 호떡이지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됐으면 해서…." 이날 할머니는 호두, 흑설탕 등 호떡 재료와 굽는 기계를 들고 한달음에 달려왔다.
할머니는 원생들에게 호떡을 먹이기 위해 새벽 일찍 찹쌀 5㎏을 반죽했다. "호떡은 반죽이 생명이야. 반죽을 마치고 7시간 정도 숙성을 시켜야 해. 호떡을 먹으며 즐거워할 원생들의 모습이 선해 정성껏 반죽했어."
할머니는 초교 학력이 전부지만 호떡만큼은 박사다. 호떡과 함께 한 시간도 어언 30년이 넘었다. "호떡 팔아 아들, 딸을 모두 키우고 출가시켰어. 지금까지 동고동락한 호떡이 내 남편이야."
할머니는 서문시장과 경북대, 서구 내당동 등지에서 손수레를 끌며 호떡을 구웠고 10년전 청도로 옮겼다. "10년 전 남편을 잃고 이사를 했어. 혼자 농사를 짓고 싶었지." 하지만 집에서도, 밭에서도 늘 호떡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지난해 9월부터 호떡 장사가 아니라 호떡에 사랑을 담아 나눠주는 일을 하고 있다. 재료 값을 빼고 남은 모든 수익금으로 다달이 홀몸노인과 장애인, 그리고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돕고 있다. "그동안 이웃들에게 받은 사랑을 갚고 싶었어."
청도에서 할머니는 유명 인사다. 불판을 가지고 다니며 즉석에서 호떡을 구워 번 돈을 어려운 이웃에게 나눠주는 '인정 많은 호떡 할매'로 소문이 자자하다.
"소문 듣고 일부러 멀리서 찾아와 500원짜리 호떡 하나 먹고 몇천원씩 놓고 가는 손님들이 많아. 불경기라 해도 아직도 우리 사회는 훈훈해. 그분들이 내게는 든든한 후원자야."
호떡을 모두 구운 뒤 돌아갈 채비를 하던 할머니는 "힘이 없을 때까지 호떡봉사를 계속할 생각"이라고 했다.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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