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독도] 자연환경-식생①

입력 2009-03-06 09:08:18

▲ 겨우내 움츠리고 있던 땅채송화들이 모처럼 봄볕을 받아 물주머니가 찬 듯 탱글탱글하다.
▲ 겨우내 움츠리고 있던 땅채송화들이 모처럼 봄볕을 받아 물주머니가 찬 듯 탱글탱글하다.
▲ 겨우내 끊겼던 연락선이 3개월 만에 운항을 재개, 올해 첫 손님이 동도 접안장을 내려서고 있다.
▲ 겨우내 끊겼던 연락선이 3개월 만에 운항을 재개, 올해 첫 손님이 동도 접안장을 내려서고 있다.

"여보세요. 뭐 하나 좀 물어봅시다. 거기 독도에 정말 대나무가 있습니까?" "독도에는 대나무가 없습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그러시죠?" 다짜고짜 날아든 전화가 의아스러워 물었다.

"저는 대전에 사는 독자입니다만, 일본이 '다케시마'(竹島)라고 하니 궁금해서 그럽니다. 그럼 전에도 대나무가 있었던 적이 없습니까?" 결론은, 현재 대나무가 없을 뿐더러 지금까지 대나무가 자랐던 흔적은 동·서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부슬부슬 떨어지는 봄비가 바위섬을 적신다. 겨우내 희끄무레하던 돌이끼들은 봄을 맞아 푸른빛을 내비친다. 어느 틈에 돋았는지 억새 사이로 새싹들이 파랗고 바위틈 술패랭이꽃잎도 생기가 올라 푸들푸들하다.

겨우 옷을 적시는 이슬비에도 섬의 아랫도리는 빗물이 골을 따라 흘러내린다. 비와 바람에 씻기고 깎인 이 바위섬은 앞으로 얼마나 더 지나야 닳기를 멈출 것인가. 바위 사이를 흘러내리는 흙물을 보고 있으면 내 살갗이 쓸려나가는 기분이 들어 속이 아리다.

섬이 한 모금 물기를 머금지 못하고 바닷바람과 햇볕에 말라 바위들조차 파삭파삭한 이 마당에, 한줌 흙은 얼마나 고마운가. 바위틈에 붙은 한줌 흙은 비로소 생명을 키우고, 그 생명들은 흰 바위를 덮어, 끝내 살가죽을 만든다. 그렇게 흙으로 덮인 섬은 또 다른 생명을 살찌게 키워낼 터인데….

그러나 우리들의 안타까움과 상관없이, 하늘은 그런 시시콜콜(?)한 사정 따위는 염두에 두지 않는다. 단지 때를 맞춰 비를 뿌리고 바람을 내리면 그만이다. 바윗돌 위에 살가죽을 덮고 뭇 생명을 키워내는 일은 단지 땅 위에서 생명 있는 것들의 몫이다. 그 땅 위에 뿌리를 내리는 것들은 살아갈 것이고,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것들은 스스로 살아갈 여지를 붙잡지 못할 뿐이다.

독도가 식물이 착근(着根)하기에 여느 섬과 다른 악조건인 이유가 그것이다. 아직 풍화가 완성되지 않은 암석, 얕은 흙 그리고 강한 바람에 견딜 수 있는 것들만 받아들인다. 내풍성(耐風性) 내건성(耐乾性)에다 내염성(耐鹽性)까지 갖추지 못하면 생명을 가꿀 수 없다.

그래도 최악의 생존 조건을 딛고 독도 바위 틈새에 끼인 먼지에 뿌리를 박고 번식하는 것들이 있다. 땅채송화가 그들. 학자들은 이끼류 이후 최초로 선보인 독도의 식물군은 땅채송화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독도에서 가장 큰 군락을 이룬 식물인 땅채송화는 돌나물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줄기와 잎은 채송화와 비슷하게 물주머니 모양으로 통통하지만 채송화 잎에 비해 둥근 형태를 띤다. 5~7월에 가지 끝에서 노란 꽃이 핀다. 봄부터 가을까지의 식물상(相)은 학자들에 의해 채집·기록되었지만 겨울나기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지난해 12월부터 2월 말에 걸쳐 관찰한 결과 땅채송화는 겨울철에도 푸른색 잎을 그대로 유지하며, 다만 기온이 크게 떨어질 때는 동해(凍害)를 입은 듯 허옇게 무른 잎이 가끔 보였다.

땅채송화가 바위 위에 뿌리를 박고 흘러내리는 흙을 조금씩 몸으로 받아 모으면 그 다음 슬금슬금 비집고 들어오는 식물군이 개밀이다. 개밀은 섬 지방 햇볕이 잘 드는 길섶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벼과(科)의 여러해살이풀이다.

잎은 긴 줄 모양이고 색깔은 녹색이나 흰 분가루 칠한 녹색을 띠는 유럽원산의 귀화식물이다. 육지에서는 퇴비나 가축사료로도 쓰인다. 독도에서는 개밀이 있어 쉽게 둥지를 틀 수 있기 때문에 괭이갈매기가 산란하러 모여든다는 설도 있다.

척박하고 염분이 많고 바람이 거센 악조건 아래서도 이들은 개척식물군으로 '푸른 독도'의 첨병 노릇을 하고 있다. 이후 흙이 조금씩 모이고 풍화속도가 지연되면서 여러 가지 씨앗들이, 주로 새의 이동을 따라 들어와 점차 자리를 잡고 세력을 확장하게 된다.

그러나 대나무는 종자번식이 어려운 초본류이며 설령 종자번식을 하더라도 애초 땅채송화나 개밀과 같은 생명력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이곳 독도에서 뿌리내릴 수가 없다. 독도 어디를 뒤져도 '다케시마'(竹島)의 단서는 찾을 수 없다. 지금 독도는 막 물이 오르기 시작한 땅채송화 잎이 봄볕을 받아 탱글탱글하다. 전충진기자 cjje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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