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 대한 사랑이 그의 종교" 김수환 추기경의 사상

입력 2009-02-17 08:42:08

16일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은 종교계를 뛰어넘어 20세기 한국 사회의 정신적 지주였다.

20세기 초반부터 21세기 초입까지 87년의 생애 동안 김 추기경은 고통받고 가난한 사회적 약자들과 평생을 함께하며 종교와 신념,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정신적, 사상적 지도자였다.

"난 1970, 80년대 격동기를 헤쳐 나오는 동안 진보니, 좌경이니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정치적 의도나 목적을 두고 한 일은 더더욱 없다. 가난한 사람들, 고통받는 사람들, 그래서 약자라고 불리는 사람들 편에 서서 그들의 존엄성을 지켜주려고 했을 따름이다."(『추기경 김수환 이야기』/평화신문 엮음/225쪽)

그는 유신정권과 지학순 주교 사건, 1976년 3·1 명동 사건, 동일방직 노조탄압 사건, 5·18 광주항쟁, 6월 민주 항쟁을 몸소 겪거나 당사자들과 함께하면서 핍박받는 이들의 편에 서서 가슴 아파했다. 그것은 이념적 편향이나 정치적 의도와는 무관한 것이었다.

김 추기경은 유신 정권과 신군부 정권에 의해 정치적인 공격을 받았지만, '나의 간절한 소망은 정치 문제 때문에 기도회를 열거나 강론하는 일이 없는 세상이 하루빨리 오는 것, 그래서 그런 세상이 오면 다리 뻗고 쉬고 싶은 것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또 '하느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존재는 무엇일까? 역시 인간이다. 또 교회는 인간 존엄성을 짓밟는 악과 불의에 저항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인권과 사회 정의를 위한 일이라면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고도 했다.

이처럼 김 추기경은 특정한 사상보다 '인간'에 대한 사랑, 바로 그리스도의 길을 충실히 따랐다.

동일방직 사태와 관련해, 그는 "기업주와 정부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면서 동일방직 노동자 편을 든 것은 그들이 강도를 만나 쓰러진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과 고통을 나누는 것은 노동 문제 개입이 아니라 사마리아인이 보여준 이웃 사랑이다"(『추기경 김수환 이야기』/245쪽)고 했다.

그는 서울대교구장 시절,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은 열망에 몸살을 앓았던 본당 신부 시절이 그리웠다. 높은 자리라는 게 간혹 창살 없는 감옥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가난한 사람들과 웃고 울었던 본당 사목 시절을 떠올리면서 답답한 마음을 달랬다'고 했다. 가난한 사람, 약자, 인간에 대한 사랑이 바로 그의 신념이자 사상이었다.

한국 가톨릭사에 남긴 그의 업적 또한 크고 넓다. 1969년 한국 천주교회 역사상 최초의 일이자, 전 세계 추기경 136명 중 최연소로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추기경으로 서임됐다. 1981년 테레사 수녀의 첫 방한을 성사시켰고,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 기념 신앙대회(1981년),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 신앙대회(1984년) 등을 성대히 치러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방한을 두번이나 성사시키는 등 교구장을 맡은 30여년간 서울대교구는 48개 본당 신자 14만여명에서 197개 본당 신자 121만여명으로 8배나 늘어나는 등 한국 가톨릭의 도약을 이끌었다. 김병구기자 k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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