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의 시사 코멘트] '무관심'에 빼앗긴 30년

입력 2009-02-14 06:00:00

지난 10일 SBS '긴급출동 SOS 24'의 '개밥 먹는 노예'편 방송 후 인터넷 포털사이트와 안동시청 홈페이지 등에는 시청자들의 항의가 빗발쳤다고 한다. 이날 방송에서는 30년 동안 노예처럼 살아오다 구출돼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한 할아버지의 사연을 전했는데, 인터넷을 통해 안동에서 벌어진 일임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신문화의 수도라고 자부했던 안동의 지역적 이미지 때문인지 유난히 항의가 거센 것 같았다. 보도에 따르면 네티즌들은 안동시청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할아버지의 30년 누가 보상하나?" "대한민국 공무원들 제발 정신 차려라" "담당지역 공무원과 주인 부부를 처벌하라"는 등의 글을 올리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또한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은 이제 개밥 안동'이라며 '안동사과 불매운동' '시장의 직접 사과' '김 할아버지의 30년 인생 보상' 등을 요구했는가 하면, 항의 글이 폭주하면서 한때 사이트가 다운되었다고도 하는데, 방송을 직접 봤으면 그럴 만도 한 일이었다.

방송을 보면 김 할아버지는 주인 부부의 강요로 오전 4시부터 일어나 하루 종일 힘든 노동을 했고, 세숫대야에 담긴 변색된 차갑고 딱딱해진 밥과 마른 된장, 고추장만을 반찬 삼아 끼니를 때우고 있었다. 주방에서 홀로 개밥만도 못한 밥을 허겁지겁 먹으면서 제대로 차린 주인밥상에 눈길 한 번 주지 못하는 모습은 시청자들의 공분을 자아낼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학대를 했으면 떠나는 순간까지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주인 남자의 허락을 받아야 했을까.

"미안한 것 없느냐"는 제작진의 질문에 "미안한 것 없다"고 말하는 주인 여자의 답변이나 "정신이 온전치 않으니 이렇게 일을 시켜도 된다"며 "먹여주고 재워주면 됐지 더 이상 뭘 바라냐"는 주인 부부의 당당한 모습도 기가 찰 노릇이지만, 사실 가족이나 동네 주민들과 담당 공무원의 무관심도 그에 못지 않은 일이었다. 주인 여자가 드세다는 이유로 김 할아버지의 처지를 외면하고 만 이웃들, 그 오랜 시간 동안 제대로 확인 한번 하지 않은 담당공무원 모두 어찌 그럴 수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그동안의 방송으로 보면 이와 유사한 일이 하나 둘 아닌 것 같은데, 모두의 무관심이 현대사회의 심각한 문제 중 하나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들이다. 어떤 이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개체성을 존중하고 다름을 너그럽게 보려는 시도'가 사람들을 무관심으로 이끈다고 말하기도 한다.

자아긍정 추구는 다른 이들을 소홀히 여기고 방치하게 만들며, 다름에 대한 피상적 수용은 관계를 서먹서먹하게 만들고 무관심하게 만든다. 이렇게 됨으로써 거꾸로 자아긍정의 실현도 이루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무관심은 남의 고통과 절망에 끼어드는 것을 귀찮게 만든다. 외면하는 게 훨씬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무관심은 사회적 약자로 하여금 망연자실하게 만든다. 자기에게 관심 갖는 사람 하나 없다는 생각이 그로 하여금 절망의 수렁으로 더욱 깊이 빠지게 하는 것이다.

학대한 주인 부부도 그렇지만 가족과 이웃, 담당공무원의 무관심이 결국 학대받은 김 할아버지로 하여금 모든 것을 포기하고 노예처럼 살게 만든 것은 아닐까.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큰 악은 분노나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이라고 하는지도 모른다.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개념들에게도 적용된다. 교육의 반대는 무지가 아니라 무관심이다. 아름다움의 반대는 추함이 아니라 무관심이다. 생명의 반대는 죽음이 아니라 생명과 죽음에 대한 무관심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고 후에 인종차별 철폐와 인권신장을 위해 노력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엘리 비젤(Elie Wiesel)의 말이다. 안동시 관계자의 다짐처럼 철저한 진상규명을 통해 김 할아버지의 억울함을 위로하고 차제에 복지 사각지대가 더는 없는지 살피는 노력이 따라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어려움은 상당 기간 지속되리라는 전망이다. 자신의 무관심으로 인해 뜻하지 않게 고통 받고 있는 이가 주변에 있지는 않은지 한번쯤은 살펴봐야 할 것 같다.

대구한의대중어중국학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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