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 coffee]우리나라 커피 1세대 박이추

입력 2009-01-29 14:54:35

스스로를 속세의 관습이나 규율 따위를 무시하고 방랑하면서 자유분방한 삶을 사는 시인이나 예술가를 지칭하는 보헤미안(Bohemian)의 기질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하는 박이추씨. 날로 성장하고 있는 우리나라 커피업계의 거장, 내공을 가진 사람으로 불리는 박이추(59)는 어떤 사람인가? 소위 말하는 '다방 커피'시절 원두 커피들 들고 나온 장본인. 우리나라 커피 1세대의 대표격으로 손꼽히는 사람이다.

재일교포에서 1991년 한국으로 영구 귀화했다. 그의 본래 전공은 목장업 중 모초분야였다. 1960년대 후반부터 일본 목장에서 근무하면서 관련 지식을 쌓은 그는 고교 때부터 집단농장에 관심을 가졌다. 모국인 한국에서 낙농인으로서의 꿈을 이루기 위해 1970년대 초반부터 한국을 오가던 중 어느날 갑자기 비행기를 타고 현해탄을 오가는 일이 번거롭고 싫증나 영구 귀화했다는 것. 그후 1972년부터 1986년까지 경기도와 강원도에서 12,125㎡ 규모의 목장을 매입, 운영했던 경험도 있다.

그러던 중 어느날 갑자기 도시가 그리워져 일본 도쿄로 돌아갔다. 거기서 커피회사 직영 커피점에 취업, 일을 하면서 커피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으면서 커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1987년에는 10개월 동안 정통 커피학원에 다니면서 커피에 대한 지식을 세밀하고 정밀한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그러고는 서울로 와 1988년 대학로에 커피하우스 '보헤미안'을 열고 원두를 볶고 커피를 드립으로 내리기 시작했다. 현재는 강릉에서 커피점을 운영중이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2000년 2학기 단국대 서울 캠퍼스와 천안 캠퍼스에 커피전문가과정을 개설토록 하고 첫 강의에 나서면서 커피 전문가 그룹과 애호가층이 두터워지도록 하는 데 지대한 공을 세운 가운데 올해 9년째 커피 교육을 이어오고 있다.

■창업하면 제맛 못 지켜

요즘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커피전문점과 관련, 그는 "옛날에는 로스팅(커피볶는 일)을 숨어서 하면서 내공을 쌓아갔는데 요즘엔 남들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추세"라면서 세태 변화를 설명했다. 아울러 "커피 볶는 일은 기계(배전기)가 하는 줄 알지만 알고 보면 사람이 하는 것으로, 맛있는 커피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그만큼 고난도의 기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학의 커피전문가과정 강의를 하면서 학생들의 커피점 창업에는 부정적인 입장이다. 창업을 할 수 있도록 커피를 가르치기보다는 커피에 대한 지식을 알려주는 게 그의 커피 관련 강의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상업적인데 치중하다 보면 제대로 커피맛을 내지 못하고 또 커피의 진화를 가로막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알수록 고개 숙여야

그는 커피를 우유와 비교했다. 우유가 소비자와 직거래를 하듯이 커피도 소비자와 직거래를 한다. 젖소는 젖소의 맘으로, 커피는 커피의 맘으로 봐야만 제맛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로스팅과 추출 등 커피에 대해 자기 자신을 스스로 높게 평가하는 사람은 커피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다. 진짜 커피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커피를 아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낮추는 습성이 있죠. 커피를 알면 알수록 겸손하고 몸을 낮출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고수라고 할 수 있죠." 먼저 사람이 돼야 커피를 할 수 있으며, 그렇지 않으면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그는 커피에 대해 알려줄 뿐 강요는 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늘 학생들에게 "내가 당신에게 커피를 알려주고, 당신이 발전하는 것과 함께 커피도 발전하는지를 바라볼 뿐"이라고 말한다.

"저는 50년 동안 일본에서 로스팅만 해온 커피의 대가가 한 말 '커피에는 재가 없다. 사람에게도 재가 없다'는 말을 가슴깊이 새기고 있답니다. 몸과 맘이 하나가 될 때 맛있는 커피가 나오죠. 담백한 커피는 배전과 추출이 잘 됐다하더라도 인간미가 더해져야 100% 맛이 나온다 할 수 있죠."

커피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그는 "대부분이 커피를 두고 음료라고 생각하지만 약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1~3년가량 마시면 분명 달라져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적인 결함이 있는 것"이라고 단정 짓는다.

■맛 판단은 순전히 마시는 사람 몫

그는 "가게에 오는 손님들은 현재에 살지만 자신은 미래에 산다"고 말했다. 그래서 한번 온 손님이 다시오는 걸 기대하지도, 원하지도 않는다. 늘 처음이자 마지막 손님이라 생각하고 커피를 정성스레 내릴 뿐이다. 그냥 커피가 좋아서 또 온다면 감사할 따름이다. 다른 사람을 데리고 오는 것도 환영하지 않는다. 그냥 커피가 좋으면 혼자 또 올 거란 기대를 할 뿐이다.

엄격히 말하면 드립 커피가 전공인 그는 드립 커피의 매력과 장점에 대해 순전히 손님의 몫이라고 전한다. 마시는 사람이 맛 없다면 다시 뽑아줄 뿐 이 커피는 이 맛이고 저 커피는 저 맛이고 충분이 맛있다는 등의 부연설명은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커피 맛은 별도로 있는데 느끼는 사람은 느끼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느끼지 못하는 오묘함이 있죠."그래서 느끼라고 강요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드립 커피, 불순물 없이 추출해야

드립 커피는 불순물이 안 나오도록 뽑아야 한다. 입에 들어가는 순간 쓴맛 신맛 떫은맛 등 커피 종류별 고유의 맛을 느끼되 바로 그런 맛이 사라지면 정상으로 뽑은 것이고, 그런 맛이 마시고 난 뒤까지 오래가면 불순물이 들어간 경우로 보면 된다.

커피를 잘 뽑아 주면 어느 날 또 생각나게 된다. 그집 커피가…. 물론 주변의 경치와 공기, 물이 좋으면 커피맛이 더 좋게 느껴질 수도 있다.

■물이 좋으면 맛도 좋다

물과 커피의 상관관계에 대해 물었더니 그는 "물이 좋아야 커피맛이 좋다. 그러나 커피가 좋으면 아무 물이나 상관없다"는 애매한 말을 했다. "커피 한 잔에 물은 98%, 나머지 2%가 커피이기 때문에 물맛이 커피맛을 좌우할 수밖에 없죠." 그래서 자신은 힘이 달리면 좋은 물로 커피를 뽑아낸다는 것. 하지만 물이 너무 좋으면 커피의 개성이 사라진다는 점도 강조한다. 결국 커피는 커피가 말한다는 의미다.

"커피는 50%는 기술, 50%는 만드는 사람이 담아내야 합니다. 그러면 커피맛은 80%에는 도달한다고 보면 되죠."

소비자들도 복잡하고 힘든 일은 모두 떨쳐버리고 커피만 생각하고 진정으로 대화하면서 마실 때 커피는 더욱 더 맛있다고 조언한다.

황재성기자 jsgold@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