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해고 칼날에 내몰린 외국인 근로자들

입력 2009-01-29 09:35:48

▲ 28일 오후 대구 3공단과 성서공단 등에서 실직한 외국인 근로자들이 달서구 외국인노동상담소에 쉼터에 모여 동료들과 앞날을 걱정하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 28일 오후 대구 3공단과 성서공단 등에서 실직한 외국인 근로자들이 달서구 외국인노동상담소에 쉼터에 모여 동료들과 앞날을 걱정하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대구 북구 침산동 3공단에 다니던 파키스탄 출신 근로자 A(28)씨는 한달 전 "일거리가 없으니 집에서 쉬라"는 사장의 말 한마디에 해고됐다. 10명이 일하던 직장에서 해고의 칼날을 맞은 4명은 모두 외국인 근로자였다. 내국인은 한 명도 없었다. A씨는 "친구 자취방에서 지내며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지만, 외국인 근로자를 구하려는 업체를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며 "2, 3개월만 더 있어보고 일자리가 없으면 짐을 쌀 수밖에 없다"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지난해 성서공단의 한 포장업체를 인수한 김모(63)씨는 최근 월급 110만원을 주는 파키스탄인 직원을 내국인으로 교체하기 위해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김씨는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조업단축이나 휴업이라도 해야할 판인데 정부 보조금도 없는 외국인을 고용한다는 것은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며 "차라리 비슷한 임금의 내국인을 선호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으냐"고 말했다.

◆"왜 우리만?"=이달 들어 대구 달서구 본리동의 외국인노동자상담소에는 하루 종일 외국인 근로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대부분이 일자리에서 내쫓긴 외국인 근로자들. 28일 오전 취재진이 찾아간 대구외국인노동상담소 앞에서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한국인이면 가리지 않고 붙잡고 "일자리 좀 구해주세요"라고 호소하고 있었다.

이달 들어 상담소에 구직 등록서를 써놓고 돌아간 외국인 근로자는 20여명. 5개월 전만 하더라도 이런 광경은 낯선 풍경이었다. 인력시장 역할도 했던 이곳에는 지난해 9월까지 업체 사장들이 매일 인부들을 찾으러 올 정도였기 때문. 김경태 소장은 "지난해 9월쯤만 해도 일자리를 찾는 외국인근로자가 1, 2명씩 오면 업체와 쉽게 연결해 줄 수 있었는데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며 "정부가 운영하는 고용지원센터에 가도 구직회사를 찾아볼 수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새해 들어 이곳을 통해 출국한 외국인 근로자만 100여명. 모두 일거리가 없어 본국행을 택했다는 게 상담소 직원들의 한결같은 목소리였다.

성서공단 외국인 근로자들이 많이 찾는 성서공단노동조합도 마찬가지. 이곳 임복남 이주사업부장은 "지금은 등록 외국인노동자든, 미등록 외국인노동자든 상관없이 일자리가 없어 두 달 안에 재취업하기는 불가능하다"며 "실직 뒤 2개월 이내에 재취업하지 않으면 불법 체류자로 전락하는 외국인들이 상당수"라고 했다.

◆"우리도 힘들다"=외국인 근로자를 내보내야 하는 중소업체 운영자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 대구 3공단에서 플라스틱 주물업을 하는 한 업주는 "평소 주 40, 50시간에서 30시간 정도로 근무시간을 줄였는데, 주4일제까지도 검토하고 있다"며 "일거리가 예년의 3분의 1로 줄었다"고 말했다.

업체들은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아서라도 불경기를 이겨내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어 외국인 노동자를 돌아볼 겨를이 없다. 고용유지지원금은 일정 기간 내 휴업을 실시하거나 유휴 인력에 대한 훈련·휴직, 인력 재배치 등 고용유지조치 계획서를 내는 업체에 대해 수당과 임금, 훈련비 일부를 지원하는 제도로, 외국인 노동자는 대상에서 제외된다. 대구지방노동청에 따르면 대구와 경북 일부지역에 있는 업체 중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한 업체는 이달 들어 250개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표). 지난달에는 무려 647개 업체가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했다. 대구지방노동청 관계자는 "최근 들어 고용유지지원금 관련 문의가 매일 수십건"이라고 전했다.

공단 내 중소규모 업체 한 관계자는 "처지가 막막한 외국인 근로자들을 무작정 내보내는 일도 힘든 노릇"이라며 "정부가 중소 업체들을 위해 최대한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