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췌장암 투병 지영양 돌보는 강상태씨

입력 2009-01-28 08:3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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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을 만큼 힘들었어요." 10여차례의 항암치료를 이겨낸 지영이의 머리카락은 다시 자라나고 있었지만 가발은 끝내 벗지 않았다. 외과의사가 돼 암환자들을 아프지 않게 치료해주고 싶다는 딸의 말에서 아버지 강상태씨는 희망을 찾는 듯했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세 식구는 평일 대낮인데도 집 거실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딸아이는 온라인 수업에 열중이었고 그 옆에서 중년의 부부가 아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가장인 강상태(49)씨는 지난해 성탄절 이후 딸과 아내를 한 달 만에 만났다고 했다. "이번 설을 쇠고 나면 딸과 아내는 다시 서울로 올라갑니다. 볼 수 있을 때 많이 봐야죠."

팔자에도 없는 '기러기 아빠'가 된 강씨는 '지금 이 순간'이 좋다. 지난 한 해 동안 사랑하는 딸 지영(가명·15)이와 아내 이순애(50)씨를 대구의 집에서 본 건 채 보름이 안 되기 때문이다.

"29일이면 다시 서울로 보내야 해요. 1주일 동안이지만 많이 안아줘야죠."

지난해 11월 월세 13만7천원의 60㎡짜리 장기임대아파트에 입주한 뒤 두 번째 맞은 가족 모임. 하지만 이 단란한 순간도 곧 지나갈 것이라는 생각에 강씨는 일분일초가 아쉽다. 건강하던 딸이 하루아침에 병원 침대에 누워 암세포와 힘겨운 싸움을 벌이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기에 애처로움이 더하다. "소아청소년기의 췌장암은 아마도 국내 처음일 것"이라는 의료진의 판정이 왜 하필 우리 딸에게 내려진 것인지.

지영이는 제대로 앉지 못해 반쯤 누운 자세였다. 10여차례의 항암치료는 머리카락을 모두 가져가버렸고, 지금은 새 머리카락이 3cm 정도 자라 있었다. 사춘기인 지영이에게 머리카락이 없어졌다는 건 충격이었다. "머리카락이 빠지는 항암치료를 받느니 수술을 더 받겠다"고 할 정도였다.

부부가 딸에게서 이상 징후를 감지한 건 2007년 9월. 왼쪽 갈비뼈 끝 부분에서 야구공 크기만한 덩어리가 느껴졌다. 하지만 모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평소 건강했던 딸이기에 더 그랬다. 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건 4개월 뒤인 지난해 1월. 지영이가 구토와 어지럼증을 호소하고서야 병원을 찾았다. 당장 수술 날짜를 잡아야 할 만큼 암세포가 급격히 커져 지영이를 괴롭히고 있었다.

지난 1년간 지영이는 3주에 1번꼴로 항암치료를 받아왔다. 그 후유증으로 걷지도 못하는 상황이 찾아왔다. 비장, 췌장과 간의 4분의 1가량을 떼어냈다. 다음 달에는 남은 간 중 절반을 잘라내야 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장일을 하는 강씨는 지난해 8월 경북 경산의 한 아파트 공사장에서 사고를 당했다. 책상 높이에서 내려오다 발을 헛디디면서 벽에 머리를 부딪힌 것. 그때부터 집안 살림은 급격하게 기울었다. 엄마는 딸의 간호를 전담하느라 일터에 나갈 수 없었고, 강씨도 병원 신세를 져야 했기 때문이다. 지영이 치료에 쓰느라 친척들로부터 빌린 2천여만원의 빚도 갚아야 하는데, 일을 하지 못하게 된 강씨는 마른 입만 바싹바싹 태우고 있다.

사정이 이렇게 급박하지만 강씨 가족은 아직 의료보험 1종 혜택을 받지 않고 있다. 의료보험 1종 혜택을 볼 경우 혜택자에게 배당된 병실이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잦은 입퇴원을 경험한 강씨 부부는 긴급한 순간에 아이가 입원할 수 없을지도 몰라 의료보험을 신청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의료비용은 상상을 초월했다. 전셋집에서 임대아파트로 옮긴 것도 이 때문이었다. "얼마만큼 더 잘라내야 할지 모르겠네요. 장기를 다 잘라내야 하는 건지. 그래도 살 수만 있다면야…."

강씨 부부는 "딸아이가 건강해질 수 있다면 지금의 팍팍한 살림쯤은 아무 것도 아니다"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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