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사는 세상] 영남수필문학회

입력 2009-01-28 06:00:00

전국 첫 수필동인지 창간 "자부심과 뚝심 40년"

1950, 60년대 한국 문단의 주무대는 단연코 대구였다. 한국전쟁 이후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문인들이 대거 대구로 몰려들었고, 대구 향촌동은 문학의 향기가 넘실대는 명소가 됐다. 비록 그 이후 한국 문단의 주무대란 타이틀을 서울에 내줬지만 대구는 누가 뭐래도 아직까지 한국 문단에서 중추적 역할을 꿋꿋하게 수행하고 있는 도시다.

대구 문단의 황금기라 할 수 있는 1960년대 후반에 태동한 '영남수필문학회'. 1968년 12명으로 창립총회를 가진 영남수필문학회(이하 영남수필·창립 당시 이름은 경북수필동인회)가 불혹(不惑)의 나이가 됐다. 영남수필 회원은 창립 당시 12명에서 현재 55명으로 '대가족'이 됐다. 그동안 영남수필을 거쳐간 사람이 52명, 작고한 회원이 24명으로 지금의 회원을 모두 합하면 131명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큰 문학단체로 부상했다.

영남수필은 무엇보다 수필 동인지로는 전국에서 처음이라는 데에서 그 역사적 의미가 매우 크다. 지금은 수필이 어엿한 문학 장르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지만 영남수필이 창립되던 60년대 후반은 문단에서 아직 수필 분야가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했다. 문학인 또는 비문학인들의 여기(餘技)로, 또는 신문·잡지에 지면을 갖추는 구색 정도로 여겨졌던 것.

이런 가운데 대구를 중심으로 수필 동호인들이 수차례 모여 동인회 조직을 논의한 끝에 1968년 12월 21일 양지다방에서 경북수필동인회를 창립했다. 창립 소식이 알려진 후 속속 회원이 늘어났고 창립 1주년 만인 1969년 12월 '수필문학(隨筆文學)'이란 제호로 창간호를 발간했다. 당시 회원으로 활동한 이원성씨는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서 회원들의 넉넉하지 못한 주머니를 털어 순수한 자비로 출판을 해 회원 20명의 감격은 헤아릴 수 없었다"며 "수필 동인지로서는 전국에서 처음이었다는 것이 큰 긍지였다"고 회고했다.

창간호 머리말에는 "내친걸음으로 쉬지 않고 걷겠다는 결의를 새롭게 하면서 창간호의 탄생을 모두 기뻐하자"는 문구가 올라 있다. 그 다짐처럼 영남수필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일년에 한 번씩 회지를 간행, 지난해 말 40호를 발간했다. 이씨는 "한국 수필 문단에 뿌린 야무진 씨앗이 발아해 70년대 이후 경향 각지에서 수필문학회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오늘과 같은 많은 수필인이 양성됐으니 영남수필문학회가 한국 수필문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고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창립 당시 경북수필동인회이던 것이 1985년 영남수필문학회로 이름이 바뀌었다. 81년 대구가 직할시로 승격, 경북과 행정구역이 분리됨에 따라 경북이란 어감이 대구와는 동떨어진 경북지역에 국한되는 인상을 주는 것 같아 영남으로 고쳤다는 것. 동인지 역시 수필문학, 선(線), 수필 23인집, 산가재-수필 22인집, 경북수필, 수필경북 등을 거쳐 1986년부터 영남수필로 고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영남수필의 가장 큰 행사 가운데 하나가 매월 여는 월례회. 창립 당시 회원들의 문학적 역량을 기르기 위해 매월 월례회를 열어 4, 5명이 신작을 발표하고 그 작품에 대한 의견을 서로 교환하고 있다. 40년 동안 한 달도 거르지 않고 연 월례회가 지금까지 480여 차례에 이르고 월례회에서 토론된 작품 수가 1만수천여편에 이르고 있다. 또 30여명의 회원이 수필집을 냈으며 3권 이상 작품집을 발간한 회원도 12명이나 됐다. 경북문화상, 대구문화상, 수필문학대상, 한국수필문학상, 현대수필문학상, 대구문학상, 수필문학상, 금복문화상, 국제펜클럽 아카데미문학상, 영호남수필문학상 등 회원들이 받은 상은 일일이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특히 98년에 영남수필은 금복문화재단의 금복문화예술상 단체상을 받기도 했다.

창립 35주년인 2003년 영남수필은 한국 수필문학사에 길이 남을 일을 하나 더 해냈다. 다시 수필의 새로운 씨앗을 뿌린다는 마음으로 우리나라 문학 동인회로는 처음으로 '영남수필 신인상'을 제정한 것. 지난해까지 5회 수상자를 배출한 영남수필 신인상은 개성 있고 참신한 수필가를 발굴하는 터전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창립 40주년 특집호를 최근 발간한 김한성 영남수필문학회 회장은 "40년을 변함없이 순수 수필문학의 길을 묵묵히 걸어온 영남수필과 대나무는 닮은 점이 많다는 생각을 해본다"며 "영남수필이 대나무처럼 곧고 단단하게 자라 한국 수필문학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앞으로 더 많은 땀을 흘리겠다"고 얘기했다. 이번 특집호에는 회원들의 작품과 함께 영남수필문학회 40년을 뒤돌아보는 글도 함께 실렸다. 1986년 28세 때 영남수필 회원이 돼 23년 동안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곽흥렬 영남수필 부회장은 "혈기 왕성한 청년이 영남수필과 함께 세월을 보내다 보니 이제 중년의 나이가 됐다"며 "영남수필은 문학계란 대지에 깊이 뿌리 내려 꽃과 열매가 충실한 문학단체로 성장했다"고 덧붙였다.

이대현기자 s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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