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당신의 휴일은 안녕하십니까?

입력 2009-01-28 06:00:00

열려있는 문화공간 필요/'대구만의 잔치' 탈피해야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휴일마다 영화관으로 달려가곤 하였다. 그 당시에는 영화관들이 대부분 중앙로를 따라 있었다. 덕분에 지금처럼 멀티플렉스 영화관은 아니었지만 대구역에서부터 명덕로터리까지 내려오면서 네편의 영화를 하루 종일 보곤 하였다. 대구, 송죽, 자유, 한일, 아카데미, 제일, 대한, 대도극장. 환상적인 영화관 클러스터였다. 나는 감히 한국영화가 지금까지 발전해 온 보이지 않는 주역이었다고 자부한다. 나와 같은 관객이 있었기에 지금의 한국 영화가 존재하지 않았을까? 나처럼 외화, 방화 가리지 않고 영화를 보았던 관객이야말로 오늘날 한국의 영화산업이 발전할 수 있었던 튼튼한 주춧돌임에 틀림없다.

'소비 있는 곳에 산업이 있다'는 단순하면서도 명확한 진리가 세계 유명 도시들을 창조하였다. 옷을 멋스럽게 입는 밀라노 시민들이 있었기에 패션도시 밀라노가 번성하였고, 식사 때마다 와인을 즐겨 마시는 프랑스인들의 습관이 프랑스 와인을 세계 최고로 만들었고, 음악을 즐기는 비엔나 시민이 있었기에 오스트리아에 음악가들이 모여들었다.

대구는 새로운 성장동력 중 하나로 문화콘텐츠산업을 선택했다고 한다. 문화콘텐츠산업의 가치는 상상을 초월한다. '해리포터' 시리즈가 1997~2006년 올린 총 매출액은 308조원. 같은 기간 우리나라의 반도체 수출 총액인 231조원보다 많다. 정보나 첨단 정보기술(IT)을 팔아 얻는 부가가치보다 애니메이션, 영화, 캐릭터, 게임 등 문화콘텐츠산업의 부가가치가 더 커지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 대구에는 이러한 문화콘텐츠산업이 발달할 수 있는 인프라가 잘 구축된 편에 속한다. 문화콘텐츠 전공 인력만 해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하지만 인프라만으로 문화사업이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35년 전 휴일 하루에만 4~5편의 영화를 보았던 것을 생각하면 부산에 국제영화제를 뺏긴 것은 정말 안타깝다. 누군가가 먼저 시작해 버리면 그 다음은 잘 기억되지 않는다고 한다. 어느 회사의 광고카피에서도 2등은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다고 했지 않는가? 세계적인 국제영화제로 자리잡은 PIFF(부산국제영화제)는 제5회 개최를 정점으로 관객들의 숫자가 줄어든 홍콩영화제나 도쿄영화제와는 달리 꾸준하게 관객이 늘었다. 부산시민들의 영화에 대한 강렬한 애정과 자발적인 참여가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부산시민들의 노력은 고스란히 경제적 이익으로 되돌아왔다. 부산국제영화제만으로도 한해 생산유발효과 400억원 이상, 1천명 이상 신규고용이 창출되는 효과를 거뒀다고 한다.

세계최초의 산업도시였으나 쇠퇴의 길을 걸었던 영국의 맨체스터를 재탄생 시킨 것은 축구였다. 맨체스터 시민들은 세계 최고의 축구클럽을 만들기 위해 인종과 국적을 뛰어 넘어 실력 있는 선수들을 자신들의 팀으로 받아들였다. 맨체스터 시민들은 무려 1조8천600억원의 가치를 지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의 홈그라운드로 그 부가이익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

'세계 최고의 문화도시 대구' 비전을 이루고 싶다면 먼저, 누구나 대구에 들어와서 뛰어 놀 수 있는 분위기와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여기에서 태어나고 자란 우리'라는 개념에서 벗어나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구에 기여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TK 출신, TK 기업 만으로는 그저 대구만의 잔치로 끝날 수 있다. 뉴욕, 런던, 파리의 도시들은 인종과 출신을 따지지 않는다. 오직 최고들을 위한 경쟁의 장을 제공할 뿐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따뜻한 관심과 애정으로 때로는 따끔한 질책으로 문화가 뛰어 놀 수 있는 소비시장이 있어야 한다. 처음에는 소비만 있는 것 같지만 어느 틈에 그 주위에 생산이 둘러싸게 된다. 음악과 영화와 뮤지컬과 스포츠, 그리고 게임을 즐기는 소비가 커져야 한다. 그리고 이벤트를 만들어 시장을 키워야 한다. 그러면 생산자는 소비가 있는 대구로 몰려올 것이다. 그들은 더 큰 소비로 대구를 발전시키는 선순환을 만들어 낼 것이다. 우리 모두, 기꺼이 TV와 집을 벗어나 '문화'를 만나러 문 밖으로 나가자. 열린 마음으로 문화를 받아들이고 마음껏 즐기자. 거기에 대구의 미래가 있고 행복한 인생이 있기 때문이다.

도성환 홈플러스테스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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