괭이갈매기들이 올해는 유난히 일찍 돌아왔다. 예년 같으면 2월 들어서야 조금씩 모여들기 시작하는 갈매기들이 올해는 1월 중순부터 떼지어 몰려들기 시작했다. 먼동이 트는 아침 바닷가 바위에 앉았던 갈매기들은 수백, 수천 마리 무리를 지어 날갯짓하며 군무(群舞)를 춘다.
"차렷. 뒤로 돌아. 전방에 함성 5초간 발사." "야~아~." 우렁찬 함성에 놀란 독도 앞바다 괭이갈매기들이 파랗게 언 하늘을 뒤덮으며 일제히 날아올랐다. 오전 7시. 냉기에 저절로 어깨가 움츠러들고 아직 하현달은 서쪽 하늘에 걸렸지만 독도경비대원들은 일조점호를 받고 있다.
국민체조가 시작되고 김성균(22·수경) 분대장이 '하나 둘 셋 넷, 둘 둘 셋 넷' 목청 높여 구령을 붙인다. 김 수경은 전역 46일을 남겨두고 독도로 들어왔다. 2월 말까지 연락선이 끊기기 때문에 자칫하면 전역일이 1, 2주일 미루어질 수도 있는 상황. 지난해에 들어왔을 때 외출·외박이 불가능해 불편했지만 내 힘으로 독도를 지킨다는 보람에 뿌듯했다. 또 전역 때까지 동료들과 함께 있고 싶은 간절함이 그를 다시 이곳으로 이끌었다.
"입대하기 전에는 독도의 섬이 둘인지도 몰랐습니다. 이곳에 근무한 이후 아름다운 경치에 빠져들고 그럴수록 애착이 들었어요. 그래서 전역 전에 한번 더 독도에 있고 싶었습니다."
독도에 근무하는 동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내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 생각해도 귀중한 수확이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이후에도 공부가 싫고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중퇴한 후 방황도 많이 했다. 오락실 점원도 하고 나이트클럽 웨이터도 하면서 밖으로만 나돌며 살았다. 그러나 이제 전역해 나가면 형이 하고 있는 천막 조립 일을 배워 열심히 살아볼 각오이다.
군대에서의 싸움은 자연과의 싸움이다. 겨울철 초병(哨兵)에게 영하 10~5℃를 오르내리는 추위는 분명 두려운 적(敵)이다. 날아오는 총알은 차라리 엎드려 피한다지만 추위는 은폐·엄폐할 곳도 그리고 달아날 곳도 없다.
대한(大寒) 날씨에 근무를 서고 있는 독도경비대원에게도 사람을 날릴 듯 불어대는 강풍, 눈썹 위에 하얗게 달라붙는 눈발은 견디기 힘겹다. 더구나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는 것은 검푸른 바다뿐, 아무리 뛰어봐야 갈 수 있는 곳은 기껏 내무반과 식당이 고작이다. 피 끓는 젊음이 감당하기에는 더욱 버겁다.
아직 섬의 냉기가 발끝을 타고 올라오는 아침 시간. 경계근무를 서고 있는 심후진(23) 수경은 계속 잔기침을 한다. 작년에 이어 두번째 들어온 독도이지만 아직도 낯설고 막막한 기분은 어쩔 수 없다. 특히 오늘처럼 수은주가 뚝 떨어지는 날, 방한 조끼와 장갑으로 중무장을 했지만 절벽을 타고 올라오는 싸늘한 바닷바람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그러나 심 수경은 이 순간 독도의 온전함은 그의 두 눈에 달렸음을 잘 알고 있다. 때문에 꼿꼿한 자세를 흩트리지 않고 맹금류 같은 눈초리로 먼바다를 노려보고 있다.
독도수비대원들은 50년대 이후 직업 경찰관으로 또는 전투경찰로 각자의 직분을 다하기 위해 수개월부터 몇 년씩 이곳에 머물렀다. 50여년간 이곳을 거쳐간 독도 파수꾼들은 때로는 굶주림에, 때로는 추위와 고독감에 힘겨웠지만 그들은 끝끝내 인내하면서 스스로의 자리를 지켰다.
이들 독도수비대 선배들의 거룩한 희생이 있었기에 갈매기는 여전히 군무를 추고 바닷물은 여상하게 장군바위 언저리를 넘나드는 것이다. 때문에 오늘 독도를 지키는 이 젊은이들도 살갗을 파고드는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스스로의 임무에 충실한 것이다.
그들은 말한다. "독도는 우리 땅이고, 마땅히 병역 의무를 다해야 하는 내가, 이 땅을 지키라는 국가의 명령으로 지금 이곳에 발 딛고 있다."
전충진기자 cjje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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