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과 의사들한테는 체력이 무척 중요하다. 피곤하면 수술 중 집중력이 떨어진다. 수술을 보조하는 사람들한테 자꾸 짜증을 부린다. 그러면 환자의 예후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래서 의사들은 나름대로 체력 훈련을 한다. 아침마다 달리는 사람도 있고, 헬스클럽을 가는 사람도 있고, 축구나 테니스를 하는 사람도 있고, 골프를 하는 사람도 있다.
본인은 테니스를 즐긴다. 병원 교수 동호회에 가입해 월요일 저녁에 볼을 친다. 월례회 때 3등 안에 들면 문화상품권을 받는다. 이 상을 받기 위해 다리에 쥐가 나도록 뛴다. 본인의 실력은 운이 좋으면 월례회에서 상을 탈 정도다. 그러나 이 정도의 실력이 그대로 된 것은 아니다. 1년이 넘는 레슨과 10년이 넘는 각고의 노력 끝에 얻어진 결과이다. 테니스 레슨을 받아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인정사정 안 보고 코치가 무자비하게 공을 받아치고 더구나 고함치는 소리를.
"자세를 낮추세요. 그렇게 뻣뻣이 서서 공을 치면 공이 코트 안에 들어옵니까? 자세를 낮춰서 공을 치세요."
지난해 어쩔 수 없이 골프를 쳐야 할 일이 있어서 골프를 배웠다. 골프를 치시는 분들은 다 알 것이다. 60세가 넘어 골프를 배우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그래도 골프 레슨을 받았다. 코치가 고함을 친다. "힘을 빼세요. 그렇게 테니스 치듯이 힘껏 공을 치면 공이 맞습니까? 힘을 빼고 치세요."
그래도 실제로 골프장에서 공을 칠 때면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그렇게 친 공은 잔디 위로 또르르 굴러가던지, 공중 높이 떠서 숲 속으로 사라지곤 한다.
2년 전 폐암 수술을 받았다. 수술실에 들어가면서 가장 절실하게 기도했던 것은 수술 후 다시 테니스를 치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다행이 수술이 잘되어 그 후 테니스를 즐기고 월례회에서 상도 탄다. 처음에 탔던 상은 무척 귀중하게 생각되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다시 그 값어치가 떨어진 것처럼 생각되었다. 수술받고 회복한 직후에는 환자들을 내 몸같이 볼보리라고 수없이 맹세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또다시 환자 앞에 설 때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몸이 뻣뻣해진다.
자세를 낮추어야 하겠다. 그리고 어깨의 힘을 빼야 하겠다. 그래야 5천원짜리 도서 상품권을 하나라도 더 탈 수 있을 것이며, 골프장에서 한 자루씩 잃어버리는 골프공의 숫자도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그래야 요즈음 같이 힘든 세상 살아내기가 조금은 쉬워지지 않을까?
임만빈 계명대 동산병원 신경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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