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그래도 우리가 감사해야 할 이유들

입력 2009-01-16 10:38:58

불황의 그늘 우리를 조여와도/가족품안에서 희망을 설계하자

미국 발 금융위기로 혼란스럽던 지난 해 말 이런 기사를 읽었다. '경제위기에도 감사할 6가지 이유', 베스트셀러의 제목처럼 눈길을 끄는 이 기사는 위기의 진원지인 미국의 어느 일간지에 실린 것으로 내용은 대략 이런 것이었다. 가족이 모두 건강하니 감사하고, 이 시기가 지나면 곧 경기가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으니 감사하고, 부동산이 폭락해 집을 장만할 기회가 왔으니 감사하다는 등등의 내용들이었다. 딱히 특별할 것도 없는 이 기사 앞에서 나는 빠르게 읽어가던 속도를 늦추었다. 그리고 천천히 다시 읽어 보았다. 모두 맞는 말이었다.

우리는 늘 부족함을 느끼며 보다 나은 무엇을 찾아 채우기 급급한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자신을 낮추고 곰곰이 생각해 보면 평범한 자리에 있는 지금의 이 모습만으로도 감사할 일이 어디 6가지뿐이랴.

경제 위기를 맞아 각종 매체는 날마다 어두운 전망을 쏟아내고 국민들은 불안한 마음으로 정부가 내놓는 대책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냉정하게 돌이켜보자면 그동안 우리 사회는 2만달러 시대의 도래를 외치며 자기도취에 빠져있었다. 사회 경제구조뿐만 아니라 구성원들의 의식에도 거품이 심각하게 끼여 있지 않았는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세계 11대 무역국이라는 경제적 자만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성장에 따르는 건전한 기업문화나 노사문화, 국민의식 수준의 향상이 동반되었는지, 급격한 성장을 이루는 과정에서 황금만능주의와 심각한 물신숭배에 빠져 천박한 자본주의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지 않았는지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 보아야 할 것이다.

실제로 우리 사회는 어떤 집에 사는가 어떤 차를 타는가 어떤 옷을 입는가에 따라 사람의 가치를 다르게 평가하는 사회였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성공한다고 가르쳐왔으며, 작은 이익을 위해서 금세 얼굴을 바꾸고 말을 바꾸는 사람이 이득을 챙기는 반칙이 횡행하는 사회였다. 가난한 사람을 무시하고 부동산 투기로 불로소득을 올리면서도 노력의 대가로 얻은 타인의 성취에 대해서는 승복하지 못하고 질시하는 사회였다. 또한 철없는 젊은이들의 연예인 스타일 따라잡기나, 차별화 하려는 부유층과 흉내내는 중산층의 자기 과시적 소비 행태는 과연 이 나라가 '사치공화국'이며 '럭셔리 코리아'임을 여과 없이 보여 주었다. 문제는 우리사회 스스로 바른 길을 알면서도 그 길을 외면하고 불편하게 여겨왔으며, 전 구성원이 다 같이 이러한 부도덕성을 조장하고 경박한 소비문화를 부추겨 왔다는 점이다.

국민소득이 높아진다고 해서 선진국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경제대국 중국이 아무리 가파른 성장을 이루어도 인권문제나 멜라민 파동, 가짜계란 사건 같은 윤리 도덕의식의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 한 선진국이 될 수 없고 세계국가의 리더가 될 수 없듯이, 인간존중 정신과 수준 높은 사회문화, 정신문화가 정착되지 않는 한 우리 역시도 진정한 선진국의 대열에 오를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요즘 들어 위기가 기회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다시 찾아온 경제 위기를 우리는 겸허한 자세로 받아들여 사회 곳곳에 내재해 있는 부조리와 부도덕성을 제거하고 거품을 걷어내며 부실한 곳을 메우는 소중한 시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성장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가난한 이웃과 사회적 약자들을 돌아보고 이제 그들을 껴안고 사회 전체가 겸손하게 내실을 다져가는 한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더불어 경제 위기를 계기로 우리 사회의 유흥문화가 보다 건전한 방향으로 개선되어 나가기를 기대해 본다.

누구나 삶에서 가장 소중하고 진실한 가치는 가족이다. 그동안 일을 핑계로 가족에게 소홀하지는 않았는지 한번쯤 돌아볼 때이다.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거나 영화를 빌려보고, 가까운 교외로 나가 겨울 산을 오르다 보면 불황쯤은 따뜻한 가족애로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새해에는 우리 자신들의 부실한 삶을 돌아보고 작은 것에도 감사하는 한해가 되기를 바란다. 어두운 시기를 슬기롭게 극복하여 정신과 영혼까지도 풍성해지는 밝은 사회로 발돋움해 나아가기를 기원해 본다.

서영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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