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동의 전시 찍어보기] 현대미술 속의 아르카디아 모습

입력 2009-01-16 06:00:00

프랑스 국립 퐁피두센터 특별展 / 서울시립미술관 / ~3월 22일

▲ 모이즈 키슬링 作
▲ 모이즈 키슬링 作 '과일이 있는 정물'

모순과 결점으로 가득 찬 현실에 살면서도 예술가들은 낙원을 즐겨 그린다. 그래서 곧잘 이들을 꿈꾸는 자에 비유하는데, 로코코 화가 와또는 폐병으로 요절했지만 그가 남긴 작품들에는 눈부시게 잘 차려입은 우아한 연인들이 아름다운 전원에서 벌이는 축제가 주를 이룬다.

그러나 비도 오지 않을 것 같은 그 세계는 비현실처럼 슬픔을 느끼게 하는 데가 있다. 목가적인 이상향인 아르카디아에도 죽음이 있다는 내용이 담긴 바로크 작가 푸생의 작품에서 주제를 가져와 지금 서울시립미술관이 열고 있는 '화가들의 천국전(展)'은 20세기의 파국을 견뎌온 현대 화가들도 이 모티프에서 예외가 아님을 보여준다. 그림 속의 낙원은 결코 현실의 피안이거나 도피처가 아니라 절망에서 용기와 희망의 전달자로 새로운 생의 의지에 대한 표상으로 읽힌다. 예술가의 열정과 고뇌의 탐구에서 나온 것으로서 감상(感傷)이나 단순한 위안과는 구별되는 것이다.

퐁피두 국립현대미술관 측에서 직접 기획한 이번 전시는 작품 배열을 통상의 양식 시기나 유파의 연대기적 순서에 따르지 않고 10개의 소주제로 나눠 구성했다. 통시적인 접근을 시도한 큐레이터의 의도를 따라 감상해보는 것도 유익하겠지만 이 전시의 매력은 설명이나 해석이 필요 없을 만치 출품작들의 높은 퀄러티가 먼저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 것이다. 마티스나 레제, 보나르 등 이들의 작품은 색채나 선, 형태와 구성이 주제의 의미 이전에 순수하게 우리의 심미적 감각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하다.

여러 섹션으로 나누어 놓았지만 브라크처럼 한 작가의 작품 세계가 어떻게 변모를 거듭했는지 보게 돼 훌륭한 예술가의 개성은 어떤 개념으로도 묶어둘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의 초기작에서 말년의 양식까지 야수파와 입체파를 거쳐 1920년대의 고전적 양식과 후기 검은 색채의 시적인 정물화까지 모두 포괄되어 있다.

피카소와 마티스 역시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세잔느의 영향이 현대미술 속에서 어떻게 수용되었는지를 볼 수 있다는 것도 흥미로운데, 모이즈 키슬링의 정물은 가장 복고적인 양식이지만 동시에 뛰어나게 세련된 색채감각과 환상적인 사실 묘사로 재현된 현대성을 구현한다. 특유의 활달한 필선과 색채의 신선함이 돋보이는 마티스의 '초록색 찬장이 있는 정물'은 또다른 관점에서 세잔을 가장 잘 이해한 그림인 듯하다.

야수파나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자유로운 상상력과 새로운 해석을 통해 전통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보여주고 거기에 팝아트나 포스트모던의 최근 경향 작품들까지 포함시킨 것 또한 이 전시의 장점이다.

결국 낙원은 서사적인 내용이나 주제로 설명되지만 미술의 형식에 의해서 더 문제시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관객들은 훌륭한 원작들을 직접 볼 수 있는 데서도 만족하지만 이제 내용이 알찬 뜻있는 기획 전시회로 한 단계 발전을 기대한다.

미술평론가

최신 기사